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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19. 2024

늦가을의 서정 -인제 천리길 트레킹

인제천리길 20구간을 걷다

인제로 트레킹을 나섰다. 신청자들이 많아 잊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끼워주셨다. 긴 외유 끝에 몸과 마음이 늘어진 상황이라 이번 트레킹을 계기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어두운 새벽에 집을  나다. 오늘 걷는 구간은 인제 천리길 마지막 구간인 20번  길로 약 13.5킬로를 걷는다.

서울 출발장소
화양강 휴게소 풍경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양강 휴게소 들렀다. 그곳에서 만난 전원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과 강물과 촌락이 어우러져 고요한 아침 풍경을 빚었다. 철새들이 평화롭게 강물 위를 난다.

도착한 인제는 확실히 초겨울이다. 추위를 대비해서 두툼하게 입었는도 꽤 춥다. 들어선 산길은 시들어 말라버린 풀들로 쓸쓸하다.  단풍도 절정이 지나 다 스러졌다. 단풍은 땅에 떨어졌지만 고운 자태는 그대로다. 단풍이 졌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단풍이 눈물처럼 진 자리는 꽃밭보다 더 곱다. 단풍 깔린 폭신한 요 위에 드러누워 파란 가을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일찍 일어나 정갈하게 세수를 마친 듯 산은 깔끔하다. 맑은 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동트는 아침의 찬란한 햇살이 비친다. 밝은 양의 기운도 받아들인다. 아침에 호젓한 산길은 그 자체로도 만족이다. 뛰어난 절경이 아니라도 나무들이 반기는 숲이 어찌 좋지 않은가? 찌뿌둥했던 몸이 산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이 솟는다. 사람은 자연을 가까이해야 한다.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의 몸도 약해진다.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나도 자연의 일부분이 된다.

초겨울에 접어들며  무서리가 내렸다. 오그라든 풀 위에 서리가 얼어 따스한 담요처럼 덮였다. 햇살이 비치면 얼음 결정들은  일제히 크리스털 보석으로 빛다. 여기저기 반짝임이 눈부시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하나다.

 산자락을 보며 흥미로운 풍경을 만난다. 잡목이 우거 사이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소나무는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음지에선 자라나기 힘들다. 빛의 길을 따라 줄지어 도열한  소나무들이 유독 푸르다.

신비한 자연 현상만났다. 시들은 풀 대궁이에 흡사 솜사탕 같은 흰 물체가 여기저기 보인 다. 자세히 보니 얼음인데도 목화솜처럼 부드럽다. 해가 뜨면 사라질 모습이 마치 신데렐라 동화의 마법 같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야기 속에 빠져 자연을 잊고 걷는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어 둘러보면. 우리는 깊은 중을 걷는 중이다.

이정표가 나타나 일행들이 잠시 멈춰 섰다. 한 분이 임도로 계속 가면 된다고 해서 뒤따랐다. 뒤늦게 잘못된 길인 것을 깨달았다. 인도자의 책임은 이처럼 막중한 것이다. 많은 일행들이 되돌아와야 했다.


거짓말같이 계곡 응달진 곳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다. 올해 들어 처음 보는 얼음이라 너무 신기하다. 고드름을 따라 방울지며 떨어지는 물방울이 진주구슬처럼 영롱하다.

가을이 깊어 대부분 단풍이 시든 산은 황량하다. 하지만 간간이 보이는 낙엽송은 여전히 잎을 떨어뜨리지 않아 산 풍경을 빛낸다. 낙엽송은 일본 원산으로 햇빛을 좋아하고 잘 자라서 많이 조림되었다. 주황빛 낙엽송 숲과 청청한 소나무 숲이 잘 어우러져

눈이 즐겁다.  

평지를 내내 걷다 산길을 오르니 갑자기 숨이 가빠진다.

들이키는 숨이 많다 보니 마른 풀냄새가 향기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수월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려갈 적에 몸의 무게가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발가락 끝 부분에 힘이 모아진다. 그러다 보니 발끝이 너무 아프다. 더구나 발이 기형이어서 볼이 좁은 신발은 신을 수가 없기에 통증은 더 심하다. 이럴 때 등산 스틱은 효자다. 힘을 분산시켜 걷기가  훨씬  편하다.

말라버린 잠목 사이로 전나무 숲이 보인다. 옹달샘 같은 청량함이 풍긴다. 박새가 맑은 소리로 지저귀며 청량함을  더 한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길을 걷는 발걸음 즐겁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낙엽송 낙엽은 부드러워 폭신하지만 소리가 없고 참나무 잎은 밟을 때마다 명랑한 소리를 낸다.


한참을 걷다 보니 버스가 선 곳에 다다랐다. 산에서는 들리지 않던 물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골짝마다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시내를 이루어  흘러간다.

트레킹을 마치고 원대 막국수에 들러 만찬을 즐겼다. 참기름이 고소한 도토리묵과 구운 손두부 그리고 곰취 수육에 쫄깃한 감자전에 입이 신났다. 배가 부르지만 막국수는 꼭 먹어야 한다. 황금비율로 간을 하고 후루룩 들이키는 막국수에 배는 비명을 지른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만족스럽다. 자연에 깃들어 새 힘을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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