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다. 폭설이후 찾아온 추위다. 옷차림에 상당히 신경 쓰고 나서는 외출인데도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도 시릴 만큼 춥다.
겨울은 이미 왔는데 가을은 아직 곳곳에 남아 있다. 폭설을 뒤집어쓴 후에도 잎들은 말짱하다 못해 쌩쌩하다. 선연한단풍을 보면 여전히 가을 같다.
잎을 다 떨구고 붉은 열매만 덩그러니 남은 산수유가 거리에 꽃이 되었다. 알알이 윤이 나 어떤 보석보다 더 반짝인다. 마무리도 아름다운 그들의 뒷모습이 곱다.
한 해를 치열하게 살아낸 자취가 산자락에 수북하다. 일본목련의 커다란 잎들이 편안하게 누워안식하는 모습이 따스하다. 찬 대지를 부드럽게 덮어주는 사랑의 손길이다.나목만 덩그러니 남은 숲에 꽃단풍이 생기를 더한다.
잠원동 누에다리를 건넌다. 누에가 꿈을 먹으며 집을 짓던 전설을 간직한 거리다. 누에는 사라지고 누에를 닮은 다리를 지나며 지난 시절의 정취를 추억한다.
다리를 건너면 예쁜 공원이 기다린다. 방배동 서래마을 몽마르트 공원이다.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덕분에 탄생한 공원으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단풍이 마지막 정열을 불살라 다채로운 색이 찬란하다.
햇살이 부서져 내리니 컬러는 황홀해진다. 황금색, 주황색, 붉은색이 어우러져 가장 멋진 모습으로 찬란한 풍경을 빚었다. 맑고 푸른 하늘은 청명해서 명랑한 분위기 다. 가는 계절의 뒷모습이 감동이다.
단풍나무가 가을의 대표적인 물든 낙엽을 선보이지만 참나무도 때때로 놀라운 변신을 보인다. 밝은 주황색으로 옷 입은 신갈나무가 매혹적이다.
잎이 지면 나무들은 감춰둔 자신의 다른 내면을 선보인다. 푸른 잎들로 뒤덮여 주목받지 못하던 숨겨진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로 뻗은 은사시나무들의 군락의 흰 나뭇가지들이 또 다른 매력을 보인다. 황량한 겨울 숲에도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가지 끝에 빨간 팥배나무 열매가 꽃으로 피어 단조로운 풍경에 변화를 준다.
가막살나무에도 황홀한 열매가 눈부시다. 강렬한 붉은빛이 새들을 불러 모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것은 자연에도 통용되는 모양이다. 우리가 보기에도 충분히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공원 일주 끝에 아름다운 공간을 만났다. 숲 속 도서관이다. 햇살이 통유리창으로 가득히 비치는 곳이다. 자연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소장되었다고 하니 숲을 찾는 이들이 사랑할만한 장소다. 많이 걸어 피곤한 다리를 쉬며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를 마신다. 따스한 분위기에 책이 있고 뜨거운 차가 있으니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가울을 전송하는 멋진 시간이다. 이젠 겨울을 즐겁게 맞을 일이다. 세상이 시끄러워서 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