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다시 읽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에 암시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헷세의 데미안만큼 널리 알려지고 많이 읽히는 소설은 없을 것이다. 신비하고 매혹적인 막스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싱클레어의 여정은 깊이가 다를 뿐,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성장통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은 열망이 숨어있다. 이러한 점이 사람들이 이 소설에 끌리는 이유가 아닐까?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스승이라는 존재를 통해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아간다. 살아가며 누구를 만나느냐는 굉장히 중차대한 문제다. 우리 삶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주인공 싱클레어에게는 막스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부인이 길을 인도하는 스승이자 멘토다. 특히 막스 데미안은 싱클레어 여정의 시작과 끝이다. 벗이자 스승인 그는 싱클레어가 알에서 깨어나 세상에 나오도록 이끌 뿐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멘토다.
막스 데미안은 평범한 사람과 다른 길을 가는 이질적인 존재다. 그 차이는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를 지녔다는 점이다. 그는 누구나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뒤집어 보고 회의한다.
성경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그는 카인을 악인이요 죄인으로 치부하는 것을 통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카인의 표적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표적이 아니라 약한 이들이 자신의 비겁함을 포장한 것이라고 본다. 카인의 표적은 카인이 가진 비범한 정신력과 담력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옆의 도둑들 중에도 회개하지 않은 도둑이 끝까지 비겁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개성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도 카인의 후예라는 것이다. 성경을 기상천외하게 풀어내는 상상력과 인식이 놀랍다.
데미안 자신도 카인의 표적을 가진 고독한 존재라고 믿는다. 그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아브락삭스를 절대자로 여긴다. 그는 기존 관념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독특한 존재이자 비범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선각자다.
깊은 사유는 회의에서 비롯된다. 질문은 사고를 확장시키는 촉매제다. 무엇이든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분 지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경계선에 걸쳐 있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획일적인 것만큼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은 없다. 흑백 논리 앞에 조화와 타협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진 이유다.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휘둘리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만큼 근원적이고 중요한 질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과 다르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는 일은 쉬운 길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싱클레어의 여정은 험난하다. 이 책은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안전한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던 싱클레어의 유년시절은 외부세계와 접촉하면서 점차 무너져 내린다.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비롯된 악을 접하는 순간 비로소 나 자신을 최초로 자각한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과 악은 우리 삶의 양면이다. 데미안의 도움으로 어둠에서 벗어나지만 예전의 밝은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다. 차가운 현실을 알았고 그는 그 세상에 속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유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성년이 되어가며 그는 지독한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방탕한 삶으로 주위 사람들과 동화되고 인정받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하고 갈급하다. 방황하는 그에게 데미안은 간절함으로 충만할 때 앞으로 나갈 수 있고 그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힘이 자신에게 이끌 거라고 조언한다.
자신과의 지난한 투쟁 속에서 마침내 데미안은 자신 안에 내재해 있던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게 된다. 그가 그토록 희구했던 데미안이 되어...
"그걸 수행하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망이 나 자신의 마음속에 온전히 들어있을 때 내 본질이 정말로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살 때에만 가치 있어."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전혀 가치 없어, 아무 가치도 없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온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아.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거 말이야.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번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언가를 세계 속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것으로 인도한 것이다.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우리가 의무이자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이런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 그것이 가져올 어떤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기꺼이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살리라는 것.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짓부수어져야 했다. "
싱클레어의 여정을 보며 나는 과연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까를 자문해 본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가 아닌 나의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말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누구나 자신다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간 내게 지워진 의무를 다하며 다양한 책임을 속에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살았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인식하며 진실한 나로는 살지 못한 것 같다. 주변 환경과 상황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은 어쩌면 여전히 알 속에 갇혀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알을 깨뜨리고 나오는 일은 힘든 투쟁이요 고독한 길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살고 싶은 삶은 어떤 삶인지를 자문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내게도 필요하다. 고독 속에서 진실한 나를 만나고 싶다. 그렇게 나를 찾아 남은 삶은 남과는 다른 나만의 독특한 길을 가는 당당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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