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마침내, 커다란 소망 하나를 이루었다.
눈물을 펑펑 쏟았던 그날 아침,
늦겨울 차가운 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뒤흔들던 모습이 떠오른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아파트 앞 대추나무와 목련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엉엉 울었던 그 아침.
2023년 1월 3일의 아침.
책이 나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혹시 출간이 되지 않을까봐 초조했던 순간들이 쌓여갔고,
신문사와 출판사와의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긴 기다림 끝에 어버이날 아침 1월 3일 아침과 같은 시간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축하합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
출판사와 단 한 번도 통화해 본적도 없는데 책이 나왔다니, 무슨 농담이실까. 얼떨떨했다.
"기자님, 무슨 말씀이신지. 갑자기 책이 나왔다니요? 출판사와 전혀 통화도 못했는데요?"
기자님은 자신도 의아하다며 몹시 미안해했다.
여하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왔다.
책 표지 또는 속지, 그리고 활자의 디자인 등등 어떻게 작가를 완전히 배제시키고 출간을 할 수 있는지...
자존심이 상했지만, 출간해준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문제는, 주인공이 남자인데 표지 일러스트에는 여자!!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지만, 독단적으로 만든 실수의 증거이다.
수상 소감이 있는데도 따로 작가의 말을 다시 보내라고 한 것도 좀 맘에 안 들었지만, 어쨌든 부랴부랴 작가의 말을 써서 보냈었다. 그런데 책에 관련된 보도자료보다 책 소개를 작가의 말로 올려놓은 출판사의 무성의는 맘에 안 든다.
<작가의 말>
존재하지 않던 곳에 발을 들이고, 존재하지 않은 것들의 이야기를 더듬던 유령의 시간들. 허구의 세계에서 진실을 찾다 보면 현재의 내가 종종 허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소설 속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동안 내게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르고, 두 개의 자아가 치열하게 갈등한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서나 충돌할 수밖에 없는 모순. 소설은 내게 하나의 진실을 찾아가고 마주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유년의 내가 사는 섬을 향해 떠났다. 1004개로 이루어진 ‘천사의 섬’ 중 하나. 귀신이 한눈을 파는 시간, 6년 만에 온 윤달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산소 이장을 위해 파묘가 시작되었고,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버지는 그곳에 없었다. 긴 세월을 견딘 듯 가슴에 가지런히 포갠 손가락뼈는 바스러질 듯 여리고 나약했다.
거친 호랑이처럼 한 세기의 변두리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세웠던 거칠고 사나운 아버지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봄 햇살이 따사롭게 흙을 데우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볼품없이 사그라든 유골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쭈그린 채 앉아 있었다.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시래요.”
엄마의 부탁을 전했을 때, 문득 화답이라도 하듯 산 위에서 검은 등 뻐꾸기가 카카카쿠- 카카카쿠- 소리를 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세요. 섬을 떠나 멀리멀리요-.”
나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기억을 꺼내어 산등성이 곳곳에 뿌리며 소리쳤다. 나는 드디어 아버지를 내 안에서 온전히 떠나보낼 수 있었다.
섬을 떠나오기 전, 오랫동안 내 안에 웅크린 채 숨어있던 소녀를 들춰냈다. 그 섬에 그 옛날 소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허구처럼 여겨졌다. 나는 소녀를 똑바로 세우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어쩌면 더 이상 아버지와 소녀를 만나기 위해 그 섬을 다시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녀와 같은 또래의 딸을 돌아보았다. 나는 이제 완고하고 거칠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기성세대가 돼버린 내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일까. 겉으로 우리는 산뜻하게 잘 지내는 모녀 사이다. 그러나 각자의 맘속에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갈등으로 이루어진 소설처럼 현실 역시 갈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소설 속 아버지와 아들은 어쩌면 나의 일부이며 세대 간 갈등의 한 단면을 축소해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시대든 세대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세상이 갈등만으로 존재하는 곳 역시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어디선가는 용서와 이해와 화해로서 화합을 이루기도 한다. 허구로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서 용서와 화합을 도모하고 싶었다.
작품은 작가의 품에서 떠나는 순간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또한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까지 보이지 않은 커다란 인연이 닿아 있다고 믿는다. 부디 소중한 인연들과 잘 가 닿기를 소망하며, 나는 이제 더욱 단단한 작품을 쓰기 위해 부단히 애쓸 거란 다짐도 해본다.
부족한 작품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빛을 볼 수 있게 해준 현대경제신문사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 전한다.
#박숲_세상끝에서부르는노래 #2023년현대경제신춘문예대상 #현대경제대상수상작_세상끝에서부르는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