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사원의 사택 입성
농협 장학관에서 하숙집으로 이사해 대혼돈의 취준 시기를 보내게 된다...(인생 위기) 그 기간 동안 매일 새벽부터 점심까지 출근해서 일하는 프리랜서와 중3 수학 과외를 동시에 하는 등 생계형 취준생으로서 대활약을 하게 되었다.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벌었으므로 월세를 내고도 갖고 싶은 CD 다 사고, 가고 싶은 콘서트도 다 갔다. 간헐적으로 어른들에게 용돈을 드리기도 했던 듯.
아무튼 그런 몸빵으로 취준 시기를 보내다 2017년에 첫 직장에 인턴으로 먼저 입사하게 됐다. 회사는 마포구에 있어서 하숙집이 있는 용산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었지만 출퇴근 시간엔 차가 엄청나게 막혔고, 회사가 대중교통으로만 가기엔 약간 불편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출퇴근 시간을 편도 1시간 정도 잡아야 했다. 그 회사는 근무했던 1년 2개월 동안 정시 퇴근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 늘 집에 늦은 시간에 도착하곤 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회사 근처 오피스텔이 사택으로 있는 것. 여자 호수는 2개밖에 없었고(?) 한 호수는 기간을 다 채운 분이 혼자 살고 계셨어서 그분이 방을 빼고 내가 들어갈 수 있었다.
브랜드가 있는 오피스텔이었는데, 모든 것이 빌트인이었고 '원룸'이었다. 평수는 9-10평 정도 되었으나 아니... 회사 사람이랑 원룸에서 같이 살라뇨... 나의 룸메였던 타 팀 선배는 나랑 나이차가 거의 7-8살 정도 났었고, 본가가 멀진 않아서 가끔은 사택을 비운다며 내게 편하게 쓰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본가가 너무나 멀어서... 사택을 비울 새가 없는 사람이므로. 긴 자취 생활로 늘어난 짐들도 어떻게 끼워 넣어서 살았다. 늘 침대가 있는 곳에 살다가 침대가 없는 곳으로 가게 된 게 문제였다. 내 소유의 침대가 없었으므로 사택에 사서 넣었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공간이 충분치 않고 혼자만 침대를 쓰기에도 애매했다. 그래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내무반이세요)
좋았던 점은 역시 월세를 내지 않고, 관리비만 룸메와 1/N 해서 냈기 때문에 주거 비용이 확 줄어든 것이다. 관리비는 10만 원 이상이었는데, 그만큼 관리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깝진 않았다. 15분 정도 걸으면 회사라는 점도 (처음엔) 훌륭했다. 불편해도 아껴진 시간과 돈을 생각하며 정신승리하는 것이 사택의 존재 이유다. 또, 회사에 같은 팀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는 사람(=룸메)가 생겨서도 좋았다. 단순히 같이 일을 하면서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아닌 곳에서의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다행히도 나를 웃기고, 귀여운 아이 쯤으로 봐주셨기 때문에(지금 내 나이가 그 선배 나이일텐데... 나를 볼 때 정말 그냥 애샛기 그 자체였을 듯) 나는 아방방하게 살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재취업을 꿈꾸고 있었는데 집에서 마음 편하게 무언가를 준비할 수 없다는 게 늘 불편했다. 그러다 더 이상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택을 정리하고 나왔다. (물론 회사와 룸메에게 통보했음) 그리고 원룸을 하나 구해 들어가 살았다. 이곳에서 회사 출퇴근을 하면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1년은 채웠다. 월세도 다시 내야 하고, 교통비와 출퇴근 시간이 다시 들기 시작했지만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회사가 너무 싫은데 회사 가까이에서 회사가 준 집에 사는 게 결코 좋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사택의 알싸함을 느끼고 다시 선택한 곳은 은평구! 이 곳에 살면서는 내면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했다 생각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