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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Feb 09. 2021

아가씨 운전법이 따로 있나요?

당당하게 따져 묻는 그날까지

‘와~ 야 아가씨란다’

옆자리 선배가 통화를 끊고선 실소를 터뜨렸다. 어리둥절한 나와 다른 선배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선배가 전날 보복운전, 난폭운전 피해를 당했다는 거다. 너무 화가 나고 분이 차서 차 번호를 기억했다가 경찰에 신고를 했더랬다. 이틀 만에 경찰이 범인을 잡았는데, 바로 그 범인이 '젊은 아가씨'였다. 선배는 범인이 여자고, 어리고, 심지어 아가씨라는 사실이 어이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소위 그런 사람한테 난폭운전을 당할 일이냐며 한참을 떠들었다.


"젊은 아가씨가 맞지 않게 난폭운전을 하는 게 말이 되니" "경찰도 범인 잡고 아가씨라며 어이없어하더라" "여자가 운전을 조신하게 해야지" "(젊은 아가씨인) 너희들은 그러면 안 된다, 너희는 이렇게 운전 안 하지?”


나와 다른 선배는 말없이 미소만 지으며 그 말을 다 들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이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이런 걸 견뎌야 하는 게 사회생활인가...?


난폭운전이 잘못된 행동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주체가 꼭 젊은 아가씨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난폭운전범이 젊은 아가씨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여성, 특히나 젊은 여성이 운전을 재빠르게 할 수 없다는, 아니 그래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게 운전해야 한다"라는 명제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남성이 난폭운전을 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인가? 남성은 되고 여성은 안 될 게 뭐가 있는가.


경찰도 그렇다. 굳이 '잡고 보니 젊은 아가씨더라고요' 하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일이 뭐가 있는가. 별 것도 아닌 일에 차별을 느끼며 화를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난폭운전은 분명 잘못된 것이 맞지만 뒤따라오는 차별적 발언들에 괜히 범인을 옹호하고 싶어 졌다. '젊은 아가씨인 게 왜요? 젊은 아가씨가 그래도 운전을 잘하나 보네요~' 하며 천연덕스럽게 받아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선배라는 이유로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계속 입을 다물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아직 용기가 부족했다. 언제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오늘도 하지 못한 말을 글로나마 끄적여 본다. 언젠간 이 모든 것을 모아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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