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지만 반성하고 배우는 의미에서 적어보는 업무일지

1년 차 사원이지만 여전히 회사는 어렵다

by 라다

나는 회사를 1년 다닌 주니어, 즉 아직은 사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업무도 사람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것이 존재한다.

내가 다 파악했다고 정리해서 믿었던 상사들의 성격은
여전히 문득 낯설게 다가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 때도 많다. 그래도 입사 초기보다는 많이 수월해졌다. 상사들을 대하는 게 조금 편해졌다.
문제는 해왔던 대로 했는데 그게 틀렸다고 하는 잔소리를 들으면 혼란스럽다. 내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 내가 잘못해서 욕을 먹는 상황이 되면 토하고 싶다.


어쨌든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아무리 잣 같아도
이 회사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내가 그만두고 회사를 나가야 한다.



회사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도 그 순간만 이겨내면
시간은 지나고 퇴근시간이 되고 회사 밖을 벗어나면 나의 존재는 중소기업 사원이 아닌 그냥 내 자신이다. 그런데 나의 정신은 여전히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움켜쥐고 있다.

​회사의 자아, 회사 밖에서 나의 자아를 분리하라고 많이들 말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의 캐릭터와 회사 밖에서
나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만들 수는 있을 수 있지만,
그 본연의 본체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한 사람뿐인데?
그동안 회사에서 화가 나면 내 입장에서만
내 감정만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는 나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고
각자의 주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성격으로 일을 하는 하나의 사회다.



앞으로는 회사에서 있던 일들을 타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래서 업무 일지를 적어보기로 한다.


1. 하라는 대로 하자.

​나는 내 고집이 있다. 그래서 하라는 대로 하라고 해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경우가 있다. 원칙이 있고 순서가 있는데 그 순서를 지키기에는 너무 번거롭고 귀찮아서 몇 번 그냥 내 마음대로 했다.


재고를 파악하려면 재고 파악용 제품명을 엑셀 파일에서 검색해서 알려줘야 하는데 그냥 부장이 물어보는 대로 제품명을 그대로 말해서 물어봤다. 그리고 재고 파악용 제품명으로 물어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예를 들면 제품 이름이 doc-143인데 재고 파악용 제품명은 doc-143/L이다.

그런데 내가 재고 파악용 제품명을 검색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doc-143 재고 물어봤다가 /L 표시해서 물어보라고 피드백을 받았다.


아, 네네 알겠어요. 근데요? 진짜 귀찮아요.

부장이 물어보라는 대로 제품명 복붙 해서 물어봤다가 결국 한 소리 들었다.

부장은 물어볼 때 왜 /L 표시해서 안 물어보는데? 그냥 부장이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나한테 물어보라고 시킬 시간이 직접 물어보겠다.



-> 이건 내 잘못이다. 아무튼 귀찮아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라는 대로 하자.




2. 보고의 순서를 지키자.


솔직히 이게 잘못된 일인지도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데 보고도 순서가 있다.

어떻게 보면 보고는 아니고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정확하게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근데 상사 입장에서는 내가 보고의 순서도 지키지 않고 감히 사원 주제에 본인한테 질문을 했다는 사실이 화가 났나 보다.

아니면 내가 물어봐야 하는 역할이 아니고 내가 이 업무의 권한도 없으면서 물어봤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나? 근데 내가 안 물어보면 누가 확인을 하죠?

내가 담당하는 업체의 출고 건으로 결재를 받았다. 그리고 출고지가 어디냐고 정확한 장소를 물어봤다.

​왜냐하면 처음에 결재받을 때 상사가 지시한 출고 장소로 출고하겠다고 재고 담당자한테 말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상사가 지시한 곳에는 재고가 없었다. 재고는 완전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결재받은 상사한테 다시 가서 어떤 곳에서 출고를 진행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왜냐하면 컨테이너 배차는 내가 하니까 출고 장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나니까.

​그랬더니 나한테 돌아온 대답은


네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된다.

물어보는 순서가 잘못됐다.
네가 나한테 물어볼 것이 아니라

과장이 (재고 담당자) 나한테 와서 물어보는 것이 맞는 것이라며 나를 수많은 현장 직원들이 보는 곳에 세워두고 큰 소리로 나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꾸짖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맡은 업무를 잘하려고 했던 것인데 결국은 직급의 순서를 무시해버린 꼴이 돼 버렸지만, 그래도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면 나중에 업무에 차질이 생겼을 텐데 물어보기를 잘했다. 나중에 더 크게 일이 잘못되는 것보다 나은 액땜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과장이 물어봤을까?

이 회사는 업무 공유가 안되는데 내가 챙기지 않으면 모르는 나의 손해인데? 도저히 이 회사는 아무리 적응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결론은 내 담당 업무라도 보고의 순서가 있으니까 내가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면 다른 담당자에게 확인을 해 달라고 요청해야겠다? 아니, 이럴 때는 뭐 어떻게 해야 돼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3. 미리미리 알려드리자.



이것도 2번과 비슷한 이유로 혼났다. 솔직히 혼나야 하는 이유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30년 넘게 일한 이 회사의 꼰대가 내가 한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냥 그 사람의 방식에 내가 맞추는 수밖에 없다.



상황을 이러했다.

월마다 출고된 제품, 가격, 해외 거래 대금을 정리해서 월말 결산을 한다. 이 내용을 엑셀로 정리해서 출력물로 보고를 한다.

이 업무는 내가 직접 자료를 정리하고 부장님도 따로 정리를 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내가 한 자료와 부장님이 한 자료와 비교하면서 틀린 부분이 없는지 확인 후에 회계팀에 보고를 한다.



어느 날은 수출 통관하면서 페널티가 발생하게 됐는데 이 비용이 발생하게 된 이유에 대한 공문과 함께 월말 보고서를 회계팀 상무님한테 보고 드렸다. 월말 보고서를 드리기 전에 페널티 발생 관련 공문을 먼저 드리면서 이번 달에 페널티 비용이 발생했는데 그 비용이 발생한 이유는 대략 이렇고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공문을 참조하시면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월말 보고서를 안보여주고 왜 이 공문을 먼저 보여주냐고 호통쳤다.

공문을 먼저 보여주지 않으면 나중에 월말 보고서 보면서 페널티가 뭐냐고 화낼 것이 뻔하니까 미리 알려드린 건데 도대체 뭐가 잘못됐지?



이 페널티는 왜 지불하는 거냐,

우리가 비용 내면 나중에 그 업체가 송금을 해 주냐,

왜 우리가 그 돈을 내냐 등등 와다다다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담당 수출이 아니기 때문에 히스토리를 몰랐고 팀원들끼리 업무 공유가 안 돼서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할까 봐. 상세 내용은 담당자한테 물어보고 공문을 참조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보고하는 사람은 나라서 페널티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미리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업무 담당자로부터 관련 공문을 받아서 상무님께 드렸다.

상무님은 말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네가 나한테 와서 보고를 하기 전에 너네 부장이 나한테 먼저 미리 말을 하고 난 후에
네가 나한테 보고를 하는 것이 맞는 거다. 알겠냐?



아니, 진짜 어이가 없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지?



-> 다음에도 월말 보고할 때 특이사항이 있으면 부장을 통해서 먼저 보고한 다음에 보고하자.

내가 미리 말씀드리는 거랑 부장이 먼저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를까?

진짜 상사들 비위 맞추기 너무 힘들다. 상사마다 원하는 업무 스타일이 다 달라서 짜증 난다.

4.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도대체 이것도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상황은 우리가 다른 회사로 돈을 줘야 하는 경우에 결재를 받으러 가면 늘 잔소리를 듣는다.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로 돈을 주려면 지출 결의서를 올리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주 항목은 이렇다.

우리 물건을 부산항 터미널까지 운반하는 국내 운송비, 포워딩업체에 지불하는 서류 발생 비용,

또 우리 물건을 수출하려면 지불하게 되는 해상운임비, 항공 운임비가 있다.

이 금액들은 솔직히 적은 금액은 아니고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다양하다.



소소한 비용으로는 신용장 통지 수수료, 네고 수수료, 레스 차지가 있는데 이건 몇만 원에서 몇 십만 원 정도다.



문제는 이 가격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재래시장처럼 값이 비싸니까 저렴하게 해달라고 흥정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드냐, 네가 이 회사 돈 다 쓸 것이냐, 왜 이렇게 점점 금액이 올라가냐,

잔소리를 하는데 진짜 미칠 것 같다.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돈이고 당연히 발생되는 비용이다. 그런데 이 돈을 쓰는데 뭐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하루 이틀 쓰는 돈도 아닌데 매 번 이렇게 잔소리하면 어떡해요?

해상운임이 오르는 이유는 요즘 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코로나 영향도 있고 전체적으로 상황이 안 좋다.

배의 스페이스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때문에 점점 운임비는 치솟고 있다.

또 국내 운송료 역시 매 달 안전 운임제로 인해서 운송비가 올라가고 당연히 출항하기로 한 배가 지연되면 물건을 보관하면 발생하는 창고 보관비용도 발생하게 된다.


솔직히 지출결의서를 결재하는 상무님도 웃긴다.
30년 동안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나보다 더 많은 상황을 겼었을 텐데, 운임이 오르고 보관료가 발생하는 것을 모를 수가 있나? 나 말고 전임자들은 설명을 안 했던 걸까?

그래, 회계를 담당하니까 무역의 정세를 모를 수 있다. 그럼 내가 설명하면 납득을 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설명하면 매 번 돈이 비싸다고 뭐라 하는데 짜증 난다. 누구는 비싼 돈 주고 싶냐?



아무튼 비용이 점점 비싸지는 이유,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다.

근데 되돌아오는 상사의 반응이 너무 어이가 없다.



지금 이용하는 곳이 제일 저렴한 곳이다. -> 더 저렴한 곳을 찾아라.

더 저렴한 곳을 찾으려면 또 발품 팔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고, 새로운 업체를 찾게 되면 업무 세팅도 다 다시 해야 한다.

그냥 기존에 이용하는 업체와 하는 것이 실무자 입장에서는 편하다.

그리고 충분히 네고를 한 금액인데 어떡하라고요ㅠㅠ



신용장 결제에 대한 수수료는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다. -> 그럼 신용장 결제를 하지 말아라.

방글라데시, 인도는 신용장 거래로만 진행한다.

그 나라의 수입자가 신용장 결제 말고는 할 수가 없다는데 어떡해?

그럼 결제 방식을 정하는 부장한테 따지라고요. 나는 그냥 결제만 올리는 사람이라고요.



-> 답이 없다. 그냥 욕 듣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겠다.



앞으로 회사 다니면서 같은 문제로 스트레스받기 싫어서 조금이나마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정리를 해 봤는데 정리하고 보니까 더 스트레스받는다. 결국은 뚜렷한 답이 없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최대한 잔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아무래도 전자결재가 없고 대면결재를 하다 보니 더 잔소리를 듣는 것 같다. 전자결재를 하게 되면 전화해서 부르려나? 잔소리하려고?



정말 회사를 다니면서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과 들은 듣기 싫은 말을 듣고 바로 흘려버리는 기술만 늘어나는 것 같다. 나는 점쟁이도 아니고 그들의 속마음을 읽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상사들이 원하는 말만 하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름대로 잘하려고 하는 말들이 결국 나에게 독이 돼서 돌아왔다. 도대체 이 회사라는 곳 정말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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