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by 라다

11월 22일, 달력에 작은 글씨로 소설이라 적혀있다. 나에게 소설은 그저 문학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또 다른 뜻은 첫눈이 내린다고 하는 24절기 중 하나였다. 내가 태어난 그날은 눈이 엄청 많이 내린 날이었다. 우연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 주인공이 돼서 매일 하루에 한 편의 소설을 만들고 있다. 난 이미 '나'라는 서점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고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현실들이 전개되고 있다.


28번의 11월 22일을 맞이했었는데 늘 나에게 다가온 그날은 한 해 동안 폭풍 같은 파도를 견디고 잔잔한 모래밭에 앉아서 젖은 옷을 말리듯 고난을 겪고 난 후의 편안함을 느끼는 날이 되었다. 생일 축하 인사와 선물을 받으면 그해의 인간관계 평가를 받은 기분이었다. 여유가 없어 지인들에게 관심이 없든 해는 축하의 수가 적었다. 또, 새롭게 알게 된 사람에게 기대도 못 한 축하를 받게 되면 내가 그 사람에게 이 정도로 친한 존재일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를 거쳐 간 수많은 등장인물은 악연이 되기도 하고 함께한 사건들은 곧 다가올 비극적 결말의 복선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 공항에서 만난 사람을 포르투갈 리스본 전망대에서 또 마주쳤다. 10년 전 짝꿍을 기차 옆자리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캐나다에서 탄 미국으로 가는 버스의 옆자리에 있던 일본인을 게스트하우스 같은 방에서 다시 만났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누군가 옮기기라도 했듯이 내 옆에는 인연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머물렀다. 수많은 사람은 인연이라는 바람과 함께 불어왔고 다시 스쳐 불어가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운명의 장난질 덕분에 내 인생이라는 소설은 그 어떤 끝장 드라마보다 더 답답한 결말을 남기고 매년 새로운 시즌을 이어갔다. 진짜 소설과 현실적인 인생의 차이점은 가끔은 나라는 주인공도 모르는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소설의 결말을 알지만 정작 이 인생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나는 내 인생의 결말을 도무지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