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낄 것을 아껴야죠
보통 업무가 여유로운 편이면 오전에는 논다.
논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정말 논다. 루틴 하게 매일 하는 업무 처리하고 메인 업무는 오후에 밥 먹고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아침에는 피곤하고 감정적으로 예민해서 집중이 잘 안 된다. 과몰입하는 것 피하기로 했지만 나의 성격상 p는 늘 미루고 계획이 없이 산다. 회사에서도 이런 나의 성격은 변하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이든 해야 하는 일이든 미루고 미루게 된다.
회사에서 내 자리는 늘 고정적이고 또 한 공간에 12명이 있다 보니 전화하는 소리나 대화 소리에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하다. 메인 업무는 반드시 숫자나 자료를 올바르게 입력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정신없는 오전에는 급한 일이 아니면 안 하고 오후에 집중해서 하는 편이다. 오늘은 오전에 내 신경을 건드리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출근을 했고 동료분들에게 마음 샌드를 나눠줬다. 마음 샌드를 한 입 먹자마자 "음~ 맛있어~~!"라며 감탄사를 외치는 동료를 보니 나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나 보다.
그런 기쁜 마음을 갖고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해보려 했는데 뒤에서 부장님이 "프린트 켜 있어?"라고 말함과 동시에 프린트 전원을 확인해 보니 꺼져있었다. 출근과 동시에 본체 전원을 누르고 프린트도 전원을 켠다. 내 책상 바로 옆 자리에 프린트가 있기 때문이다.
프린트는 사용한 지 7년이 넘어가다 보니 가끔 이렇게 전원을 켜도 안 켜지는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콘센트를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 꼽아야 한다. 멀티탭을 만지려면 책상 밑에 들어가야 하는데 깁스를 한 상태에서 책상 밑에 기어 들어가는 상황이 짜증 났다. 이 부분은 내가 좀 예민했다.
직장생활을 하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많다. 왜 하필 프린트는 내 책상 바로 옆자리에 있고 A4용지는 나만 채우고 프린트가 고장 나면 왜 내가 고쳐야 하는 걸까. 회사의 연봉과 규모 그리고 산업군을 선택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선택할 수 없는 것이 같이 일하는 동료와 자리이다. 사실 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동료와 자리 아닌가?
프린트가 켜져 있는지 물어보는 말투가 반말이라서 1차적으로 짜증 났다. 평소에 프린트하면서 종이가 없으면 직접 채우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한 번은 프린트를 하다가 종이가 없어서 프린트를 하다가 중간에 멈췄더니 스스로 종이를 채우더라.
두둑이 종이를 채워둬도 프린트를 하는 사람이 다 쓰면 종이를 채워놔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경솔했다. 회사는 상식이 안 통하는 곳인데 내가 상식을 또 가졌었네.
프린트와 관련된 일화를 하나 더 풀어보자면 입사 초기에 사장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교육 관련 안내 자료를 인쇄했어야 했다.
사장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자료이고 또 이메일에 첨부된 내용을 인쇄하는 것이라 A4용지에 자료를 출력했다. 또, 이면지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면지를 사용할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런데 부장님이 "야, 이런 것은 이면지 써"라고 매우 차갑게 말했다. 아, 이면지 사용 물론 환경을 생각한다면 쓰는 것이 맞지. 왜 반말을 하지?
그리고 이면지가 어디 있는지 알려준 적이 있었나? 또 내부 결재지만 사장님 결재를 받는 문서는 이면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내가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반응에 매우 놀랐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이면지로 쓰는 것을 발견했다. 퇴사자가 생겼고 후임을 구하기 위해서 활동적으로 채용 사이트에 공고를 올렸다. 면접을 보고 외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아져서 곧 새로 온 사람이 오려나 기대를 했었다. 평소 이면지 사용에 대한 교육 아닌 교육을 거하게 받아서 여느 때처럼 이면지를 들고 서류 하나를 뽑았다.
A4 뒷면에 희미하게 보이는 숫자들이 수상해서 뒷면을 보니 얼마 전에 면접을 보러 왔던 사람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있었다. 충격이었다. 내부 직원도 아니고 외부 사람의 개인정보가 보란 듯이 쓰여 있는 종이를 이면지로 사용하다니.
이면지 사용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가 희생될 정도라면 이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