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 집 김치의 맛이 변할 수 있듯이

변하는 친구관계에서 회의감이 든다면

by 라다

늘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라서 친구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를뿐더러 지금의 몇 없는 친구들도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모른다.


어쩌면 친구를 만드는 행위 자체도 회피하며 살았다. 친구가 없었기에 친구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는 것도 용기와 도전이었다.


혹시나 내가 내민 용기와 도전의 손을 상대가 잡아주지 않으면 어떡할까 두려움으로 큰 비눗방울을 만들어 그 안에 갇혀 살았다.


또 지금의 곁에 있는 친구가 언제 남이 될 줄 모르는 것이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너무 지치는 일이라 생각했다.


요즘은 내 곁에 평생 있을 거라 믿었던 친구의 옆자리에는 이제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있음을 보며 그들과 나의 관계의 거리가 멀어짐을 느꼈다. 역시 영원함이란 없고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서 깊었던 관계는 언제든 느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에 익숙해지고 있다.


가치관에 따라 삶의 모습은 바뀌기 마련이고 변화하는 일상 속에서 가까이 지내는 친구의 존재도 바뀔 수 있다.


이제는 학교가 끝나면 500원을 내고 종이컵에 떡볶이를 담아서 같이 이러쿵저러쿵 신발주머니를 발로 차며 피아노 학원을 가던 내 옆에 있던 그 친구는 토끼 인형 20개로 역할극 놀이를 하는 아기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내 옆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친했던 존재도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서 존재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직/이사/결혼/이민 등의 이유로 같은 조직에 속해있어 매일 같은 일상을 함께하던 사람이 이제는 나와 다른 곳에 소속된 사람이다. 소속된 곳이 다르니 하루를 보내는 루틴도 달라진다. 그래도 같은 추억을 간직해서 유지되는 우정의 끈은 소원을 이뤄주는 소원팔찌가 절대 끊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던 것처럼 강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변화된 상황에서 우리의 우정을 연결하던 팔찌는 언제든지 느슨해져 끊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배우게 되었다.


친한 친구라서 이해하고 넘어가던 부분들을 이제는 친함이라는 무기로 용서하지 않고 더 이상 친함의 이유로 감싸던 불편함으로 포장된 애정이 사라졌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맞는 것은 맞는 것이다. 나를 지키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다.


때로는 친구라는 이유가 내가 겪는 인간관계의 잔인한 아픔의 무기가 되기도 하더라. 친구도 결국은 남이니까. 친구라는 존재에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기대치는 내가 높이고 기대치를 채우는 역할은 친구에게 바라던 것이었다.


친하고 알고 지낸 시간이 오래됐다는 것이 친구로 인해 받는 영향이 모두 긍정적이라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던 자주 가는 순댓국 집에서 나오는 김치의 맛이 변할 수 있듯이 친구와 나의 우정을 구성하는 상차림에 이제는 달라진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존재들은 너무나 수월하게 지속된 우정의 맛을 바꿀 수 있다.

내 일상의 구성은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자기 계발, 건강한 체력을 갖기 위한 운동, 요즘 인기 있는 맛집에 가서 새로운 맛을 맛보는 것이라면 친구의 일상의 구성은 아이의 어린이집을 어디로 보낼 것인지, 계절이 바뀌면 내복을 어디에서 살지, 양갈래로 머리를 해서 등원을 시킬지에 대한 구성이라면 이 두 친구의 대화의 공통점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

서로가 바라는 이상향의 목표가 다르고 원하는 곳을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이 친구라는 이유로 서로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면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같은 추억을 가진 친구의 존재가 때로는 너무나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당연한 것이다.


모든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우정을 유지하는 친구와 정말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가는 길이 왼쪽이라면 나와 함께 왼쪽으로 가는 새로운 친구를 찾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며 느끼는 것은 꼭 같은 동네에서 자라지 않고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같은 나이가 아니라도 사회에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친구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지내는 것. 친구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완전한 우정의 수단들은 모두 끊어버리는 상상도 했다.


다 차단하고 새로운 곳에서 혼자 지내면서 새로운 장소에 익숙해지면서 그곳에서 친구를 만드는 나를 배우고 싶다. 낯선 곳에서 익숙해지는 나의 모습은 어땠는지 그리워졌다. 현재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보면 나의 관심사가 보인다고 한다.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는지 되돌아봐야겠다.


친하다 믿었던 익숙한 친구로부터 느끼는 낯선 조각은 너무 싫어. 그렇지만 낯선 친구로부터 만들어가는 그 조각들은 모여 익숙함의 새로운 우정으로 또 다른 나를 가득 채워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