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는 순간을 이겨내는 방법
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보다 더 최악은 없을 거야'라며 지금 내 앞에 가로막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어한다. 사실 현재보다 지나간 그 어떤 일들은 그때도 최악이었다 생각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최악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 보다 더 최악의 일이 생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또 지나간 일들은 왜 흐릿해져서 막상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려고 하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앞에 뿌연 안개처럼 펼쳐진 내 앞의 길들이 보일 듯 말 듯 흐리기만 하다. 그리고 불확실함을 갖고 그 어떤 익숙함을 믿고 앞으로 간다. 직선의 길일지도 구불구불 꼬부랑 길이 될 수도 있지만 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중간지점에 와 있더라. 돌아보니 처음 내가 출발점에서 바라본 그 흐릿하던 연기들 속에도 희미한 의지에 힘입어 내가 갈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길의 끝에 도달하면 처음 흐릿한 연기 속에 숨어 있던 길들은 내가 언제 숨어있었냐며 거짓말처럼 내가 겁먹었던 불안함이 민망해질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 그 길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안개라는 잠깐 머무는 방해물이 내가 길의 존재를 잘 기억하고 있냐 실험이라도 하듯이 장난을 쳤던 모양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안개처럼 흐릿한 연기들이 뚜렷했던 존재들을 감추는 때가 온다. 비록 선명하지 못해서 초조하고 불안함을 안고 헤쳐나가지만 결국 지나오면 더욱 큰 안도감이 느껴진다.
지친 순간들 속에서 고통받는 나한테는 솔직해도 되잖아. 그 어떤 방해물들도 상관없잖아. 어쩌면 이 순간이 나에게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을 파악하는 세포들이 건강하다는 거잖아. 내가 느끼는 상황들을 거부하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남들의 행복과 불행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나에게만큼은 솔직해져 보자. 불행도 인정하자.
결국 꿀을 얻기 위해서라면 달콤함이 꽃 속에 숨겨진 보물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가시가 있든 없든 일단 그 속에 꿀이 있다는 믿음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그 꿀을 얻으려고 달려든 것은 나 자신이니까. 그 아무도 나에게 꿀을 얻으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남들도 본인들이 더 많은 꿀을 얻기 위해 몰래몰래 꽃 속에 들어가니까. 저기에 꿀이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안 한다. 왜? 좋은 것은 나만 얻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니까.
행복과 기쁨은 조건 없이 즐기면서 왜 슬픔과 불행은 피하려고만 하는 걸까. 그들도 당연한 그들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인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하며 흐름 속에 지나간다면 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길도 끝에는 햇빛이 비추고 있겠지.
뒤에는 차들이 나를 따라오는데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고 멈춰만 있을 수 없다. 일단 천천히 가면서 안개를 처음 느끼게 한 출발점과 멀어지는 일, 그 일 먼저 하면서 나아가면 된다. 이러나저러나 만나게 되는 끝에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얻는 것이 생기니까.
안갯속에서 길을 잃을지 또 다른 길이 생겨 더 빠른 길로 안개로부터 벗어나는지는 오로지 길을 가는 나만 아니까. 나 자신에게는 솔직하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다 감당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