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는지 집에 오는 길에 배가 꽈배기처럼 꼬여 온 장기가 요란스럽게 꼬여버려 극심하게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편두통이 계속되었다. 딩딩 거리는 울림에 정신을 잃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잠깐 의자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났다.
나에게는 위경련이 오고 두통으로 고통받는 일도 남들에게는 그저 별 일이 아닌 일이고 내 일이 아닌 일로 여겨진다. 겪어보지 않으면 전혀 공감할 수가 없는 상식 밖의 일이니까. 두렵다. 이게 진짜 남의 일일까. 네가 겪게 될 수도 있는 일이고 이 상황과 반대의 일도 생길 수 있는데.
이 세상에는 제어할 수가 없는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한 일이 있다. 뉴스를 보면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지 볼 수 있고 회사를 가면 한 기업의 우두머리가 어떻게 회사를 망하게 하는지 볼 수 있다. 정말 어떤 조직의 리더라는 것은 정상적인 상식을 갖고 살기 힘든 걸까. 말도 안 되는 일을 말이 되는 일로 만들어버리는 무근본의 능력도 능력이라면 근본 있는 능력은 어떤 식으로 인정해야 할까.
다정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따뜻함으로 가슴을 내밀어도 정작 이 세상은 나에게 그리 다정하지 않다. 온몸이 젖어 추위에 벌벌 떠는 나에게 부드러운 담요가 아닌 창살이 천으로부터 벗겨진 날카로운 우산만 손에 쥐어져 있을 뿐이었다.
정작 나라는 존재를 지키는 우산이라고 소유하는 것도 창살을 보호하는 플라스틱으로 부터 벗어나 뾰족한 쇠창살은 나를 찔러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는데도 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현실이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내가 세상에 보여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친절은 어떻게 돌아오는 걸까. 나에게 다가온 따스한 햇살의 손길을 내가 거부했을까 햇살이 차가운 바람이 만든 그림자라 오해를 했을까.
내가 두 발로 걷는 길과 두 눈으로 보며 바라보는 세상은 늘 사랑스럽고 행복한 존재로만 가득 찰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은 다양성으로 구성되며 그 다양함에는 양의 기운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음의 기운이 조금 약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 불행 속에서도 행운을 찾으려 불구덩이에 들어가 한 조각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는 행복과 노란 나비가 날아다니는 달콤한 꽃잎이 흔들리는 초록 잔디밭 속에 개똥을 밟은 더러움의 실소, 과연 나는 행운을 찾기 위해 불을 마주해야 할까? 개똥을 밟더라도 더 많은 코 끝이 향긋해서 콧바람을 뿜으며 웃음이 나는 잔디밭을 걸어야 할까?
불구덩이로 들어가 온몸이 타들어가도 내 손에 네 잎 클로버 하나가 쥐어져 행복하다면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맞겠지?
참 어려운 세상이다.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면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벗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 행복이 다시는 찾지 못할 머무를 곳이라는 것을 누군가 알려줬다면 불안정한 미래를 향해 걷던 나에게 발걸음을 돌리라고 소리쳤으면. 나의 지금은 달랐을까.
불구덩이가 무서워 불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네 잎 클로버의 존재도 알 수 없었을까? 고통을 이겨낼 만큼의 행운이 있다는 확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 길의 끝에 행복의 존재를 네 잎 클로버가 아니라도 다른 존재로 만들어 고통의 끝을 행복의 끝으로 장식하는 게 인간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