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파 먹혔을까
지난여름, 안보이던 날파리가 한 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내 눈에 보이는 날파리의 수는 점점 많아졌다. 그 작고 빠르게 날아다니는 날파리가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생겼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에어컨을 설치하고 날파리가 많아졌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에 에어컨을 설치한 나는 에어컨 때문인가? 며칠 지나면 날파리가 없어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느 날 김밥을 포장해서 먹고 냉장고에 넣는다는 것을 깜빡 잊고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식탁 위에 랩으로 쌓은 김밥은 검은깨 떡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김밥을 감싸던 랩 안으로 날파리들이 가득했다. 어떻게 랩을 뚫고 저 안으로 들어갔을까?
랩을 뜯어보니 날파리 수백 마리가 날아다니는데 이건 정말 악몽 같았다.
날파리의 심각성을 깨닫고 도대체 이 날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찾아봤다.
설거지를 하고 문득 고개를 돌려 냉장고 위를 쳐다봤다. 아, 찾았다.
날파리의 근원지를 드디어 찾아냈다.
인터넷 배송으로 바나나를 구매했다. 배송받아 종이봉투에서 열어본 바나나는 노란빛보다는 연두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로 먹기에 부드럽고 달콤한 바나나보다는 퍼석하고 쓴맛이 날 것 같아서 좀 더 숙성시키기로 했다. 바나나는 며칠만 지나도 금방 검은색으로 변해서 물컹해져 버린다. 나는 바나나 꼭지 부분을 뚝 꺾어서 껍질을 까먹어야 제 맛을 느끼는 편이다.
어떻게 하면 바나나를 노랗고 적당히 부드러운 상태로 오래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초록창에 바나나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바나나를 높은 곳에 두면 더딘 속도로 상한다고 했다. 그래서 냉장고 위에 바나나를 올려뒀었다.
그 사실을 3주가 넘도록 잊고 있었다. 초파리들이 수백 마리가 바나나를 파고들었다. 구더기가 꿈틀꿈틀 움직였다. 그 시궁창 같은 곳에서도 생명이 살아있었다.
바나나는 노란빛은 찾을 수 없고 연탄처럼 검은색으로 변했다. 재빨리 바나나를 버렸다.
바나나는 곰팡이로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검게 변해버렸다. 바나나를 버린 곳은 검은 얼룩과 날파리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날파리들이 득실거리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날파리들을 보니 구역질이 났다.
그렇게 바나나를 버려도 며칠 동안 날파리는 계속 부엌에서 날아다녔다. 썩은 바나나를 버려도 남겨진 흔적은 꽤 오래갔다. 날파리는 벽에 붙어서 떼를 짓고, 점묘화처럼 검은 날파리들은 뭉쳐서 형태를 만들었다. 바나나 한 송이가 나에게 저주를 내렸나 보다. 본인에게 무관심했다는 이유로 날파리 수백 마리로 복수를 했나 보다. 바나나에게 너무 무심했다.
어쩐지 바나나가 어느 순간 없어져서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았었는데 왜 냉장고 위에 올려뒀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까.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냉장고 위에 바나나를 올려뒀다는 사실을 잊은 채, 노란 바나나는 검은 시체가 돼서 버려졌다. 3주가 지나도록 바나나가 썩어가고 날파리들이 번식하면서 깊은 곳까지 파고든 망가진 바나나를 보니 나에게 철저히 외면당해 모습을 잃어버린 바나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바나나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언젠가 발견했을까? 바나나를 사고 먹어야겠다는 여유도 없이 살았던 걸까?
나는 3주 동안 냉장고 위를 쳐다볼 시간도 없었던 걸까? 앞으로 내 시선을 벗어나는 곳에 식재료를 두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웠다.
바나나가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썩은 바나나를 보니 눈물이 났다.
돌보지 못해서 병이 날 대로 병든 내 마음 같았다.
바나나가 썩은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저렇게 검게 변해서 어둠이 득실거리는 더러운 날파리와 곰팡이로 형태를 감춘 모습 같았다.
내 마음을 보게 된다면 저 바나나처럼 망가져있을 것 같았다. 나를 다독이고 나를 더 아껴주기로 했다.
바나나를 버린 것처럼 나 마음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더라도 더 이상의 썩는 것을 막을 수는 있겠다.
더 이상의 썩은 바나나는 내 인생에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