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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다 Feb 27. 2023

나라를 바꾼 나의 이직 이야기


꼭 전공 살려서 취업해야 될까?


우리가 보통의 취업을 생각하면 학교 전공 살려서 인턴을 하고 괜찮은 회사면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서 계속 그 회사를 다닌다. 혹은 인턴을 하고 다른 회사로 직무를 살려서 회사를 다닌다.

물론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싶어 다른 분야로 본인의 경험을 쌓아서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전자처럼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4년 동안 공부한 시간, 투자한 돈을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의 취업 현실을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았다. 다니고 싶은 회사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건 회사도 나라는 노동자를 선택해야만 가능했다. 나 혼자 박수를 친다고 짝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회사는 정말 많은데 하루에 최소 9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을 선택하는 일은 엄청난 일이었다.


긴 이야기는 생략하고 나는 한국에서 중소기업 2년의 경력을 갖고 중견기업으로 이직을 희망했다. 퇴근을 하면 이력서와 자소서를 업데이트하고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더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준비했다.


여러 곳에서 제안이 왔지만 다니던 직장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갖춘 회사가 없었고 회사를 옮긴다는 것은 집도 옮기는 일을 생각해야 돼서 그냥 평생직장이 여기라 생각하고 이직에 계속 실패한 나를 위로했다.

직장 생활의 힘듦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아는 지인으로부터 해외에 있는 회사로 이직 제안을 받았고 엄청난 고민을 했다.


그토록 나가고 싶었던 해외인데 수차례 경험해 봤듯이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보이는 것처럼 좋은 일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선뜻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야 할까 미련이 남았던 이유는 회사에서 제안한 조건들이 파격적이었다.



휴가가 3개월마다 2주라고요?


- 현직장 보다 높은 연봉


- 주택비 지원


- 휴가비 지원


- 휴가 제도


- 젊은 분위기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 2-3일 연차 쓰는 것도 눈치를 보는데 2주의 휴가가 너무 달콤해서 그 맛을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직하면 가장 고민되던 거주 문제도 회사에서 주택비를 지원해 준다고 해서 정말 감사했다.

 입사 제안을 받고 한 두 번은 고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고 확신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고 일단 나가보지.


비록 직무는 달라지지만 이런 조건이라면 현직장에서 낙하산 7년 차 무능력한 직장 상사와 노답 후임들과 같이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윤택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고 또 유럽이니까 여행도 하면서 조금 사람다운 삶을 여유를 갖고 누려보자며 해외 취업의 길을 선택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해외로 이직을 했는지,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는지, 경력이 많은지 물어보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영어도 엄청 잘하지도 않고 경력도 별로 없다. 오히려 나에게 이직 제안이 왔을 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제안이 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현재 회사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경력이 많고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인성이 좋고 일을 무책임하게 내팽개치지 않는 정말 기본만 해주면 되는 사람을 찾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적격자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현직장에 지인을 통해 입사해서 낙하산이다. 그렇지만 낙하산 소리 안 들으려고 업무 적응을 누구보다 빠르게 하고 싶었다.


이제는 내가 낙하산이다


완전 인생 인과응보다. 전 직장에서 경력도 없는 사람이 대리 직급을 받고 들어왔는데 지금 회사는 내가 경력도 없는 직무를 하면서 팀리더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정정당당하게 면접을 보고 채용되었다. 이 포지션에 채용된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낙하산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팀원은 처음에 얼마나 내가 싫었을까?


현지직원이 하기에 한계가 있는 일을 한국인 관리자가 해냈으면 하는 이유로 내가 채용되었고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채용된 이유는 분명 그럴 가치가 있어서 나에게 이 자리를 줬다고 생각한다.


나도 전 직장에서 경력 없는 사람이 직급 달고 직급 부심 부리면서 일 못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꼴 보기 싫은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직급 부심 안 부리고 팀원이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고 그저 나는 관리를 더 하고 현지 직원이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조금 더 내가 챙기고 책임지는 역할을 하면서 인정받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 나의 진심을 아는지 나의 팀원도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도와주고 많이 친해져서 참 행복하다.

부족하다는 소리 안 듣게 더 열심히 해야지.



단 하나라도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내가 전 직장을 다니면서 스트레스받았던 일, 일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고 고민하는 것들을 잘 알았던 지인은 내가 정말 회사의 직원으로 실무를 하면서 고민하는 부분에서 일에 대한 태도가 정성스럽게 느껴져서 책임감이 있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그 모습들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입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비록 해당 직무에 경력은 없지만 내가 했던 무역 업무의 꼼꼼함과 차분한 성격으로 수출 관리를 했던 역량을 비춰봤을 때 회계 업무도 잘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또 해외 경험이 여러 번 있어서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의 경험치가 있는 것도 좋게 봐주셨다. 그렇게 나는 이직을 했고 지금 3개월 정도 되었다.


전 직장에서 워낙 적은 연봉을 받아서 현직장에서 받는 월급과 기타 지원비를 계산하면 나는 한국의 다른 어떤 회사로 이직을 했어도 받지 못했을 연봉을 받고 있다. 월급, 주택비, 휴가비를 다 포함하면 나는 연봉이 2,200만 원 올랐다. 전회사 연봉이 얼마나 작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일을 더 많이 하고 돈은 적게 받고 정말 전 직장은 악몽이었다.


현재 직장의 업무 환경과 복지가 매우 좋아서 이제 다른 회사가 이보다 더 좋은 복지를 제안하지 않는 이상 나는 이직이 더 두렵다.


전 직장에서는 이직했는데 더 이상한 회사면 어떡하지 두려웠는데 이제는 회사에 대한 눈이 높아져서 더 큰 욕심을 맛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첫 직장을 퇴사하고 이직을 결심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첫 직장부터 너무 이상하고 힘든 회사를 다녀서 다른 회사로 이직해도 이보다 더 지옥 같고 안 좋은 회사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었다. 이런 게 바로 가스라이팅인가?

하지만 역시 사람은 한 곳에서 머무는 것보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우물 밖으로 나와봐야 한다. 우물 밖이 위험한 곳인지는 나와봐야 알게 되니까.


현직장은 업무 강도는 훨씬 낮아졌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괜찮고 다 만족스럽다. 아쉬운 건 살고 있는 도시에 한인마트나 한국식당이 없는 것이 조금 슬프지만 옆 도시에 가면 해결되는 문제니까 괜찮다.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가 있을까 싶다. 현재까지는 너무 좋다. 이직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면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과
따라오는 고난을 감당할 용기가 있어야


지금 직장을 언제까지 다니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2년 정도는 더 다니고 싶다. 꼰대짓 안 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화기애애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가좆같은 말고 정말 가족 같은 친근한 분위기라서 업무 환경은 최상이다.


물론 직장생활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서 업무 관련된 사람들이랑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내 마음처럼 일이 샤라락 풀리지 않는 때도 있지만 한국에서 경험한 직장생활과 비교하면 스트레스는 10배 적다.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면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과 따라오는 고난을 감당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나는 이직을 선택했고 이에 따라오는 고통도 감수하고 있다.



가끔은 스타트업이라서 체계가 없는 부분들을 보면 당황스럽기도 하다. 어떻게 조각들을 맞춰가야 할지 고민도 되고 왜 과거에 남들이 싼 똥을 내가 치워야 하나 그런 답답한 마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전에 다니던 직장도 43년 업력을 가졌지만 있는 체계도


매일 망치는 꼰대들이 있었고 탄탄한 업력과 비례하지 않는 능력 없는 상사들의 월급 루팡하는 모습 보면서 책임회피하는 사람들이랑 일하는 것보다 과거의 똥 치우는 일을 하지만 체계를 만들어가는 지금이 훨씬 낫다. 아쉬운 건 젊은 분위기이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라서 기강을 딱 잡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다. 아무리 꼰대라도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운과 능숙함은 어떤 능력 있는 젊은 직원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삶을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을 채워줄 좋은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누려야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그건 이 세상이 아니라 유토피아겠지.


서른의 나는 여전히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을 매일 하고있다. 첫 직장을 퇴사하고 이직하면 더 이상 직장에 대한 고민은 없을거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직장,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은 평생인데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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