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졸업을 했습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직장 없이 여기저기 인생의 내 자리 하나를 찾으려고 참 멀리도 돌아다녔어요. 같은 또래 대학 동기들과 친구들은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서 경력을 쌓고 있는데 나는 왜 내 자리 하나 못 찾아서 이렇게 떠돌아다니나 속상함도 많았죠.
안정적인 직장 없이 방황하던 제 입에서 취업, 취업뽀개기, 취뽀 했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 올까
그런 날이 정말 나에게도 올까 그저 언제인지 몰라도 언젠가는 나도 취업을 하겠지라며
그동안 참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눈치도 많이 보고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아련하네요.
졸업하고 바로 인턴으로 일하면서 직장 상사분은 저에게 늘 그런 말을 하셨어요.
"ㅇㅇ씨처럼 어리고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비록 나이는 있지만 지금처럼 안정적인 월급과 사회에 소속되어 아침마다 갈 곳이 있는 삶이
더 좋다"
그때는 그 말을 하는 상사분이 너무나 미웠어요. 누구는 그 안정을 누리기 싫어서 인턴을 하고 있나.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인턴이라는 과정도 결국은 지나가는 계단 하나에 불과했어요.
인턴을 하고 부족한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서 그리고 좀 더 넓은 세계관을 갖고 싶어서
취업을 뒤로하고 캐나다로 갔을 때도 이 과정도 그저 계단의 한 단계라고 생각했어요.
1년 정도 남들보다 또 늦어지겠지만 투자한 1년이 나에게 더 나은 직장 생활의 기회를 주지 않을까 그런 희망으로 한국을 떠났었어요.
예상과 다른 캐나다 생활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지만 대범함과 강한 정신력을 배웠어요.
졸업 후, 그 어떤 경력은 없었지만 작은 저의 경험들과 맞는 회사를 찾을 수 있었어요.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고 다 어떻게든 경험을 피가 되고 살이 되나 봐요.
그렇게 취업을 못하면 어떡하나 고민에 매일 밤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격증 시험 봐서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려고 공부하고
나 이런 경험했어요~ 그러니까 나를 한 번 더 봐주세요~ 어필하려고 이것저것 도전했는데,
그 결과가 어떻든 저의 작은 부분을 발견해 주는 회사가 나타나기를 바랐어요.
비록 자랑할 만한 대기업도 아니고 그 어떤 뛰어난 연봉과 복지가 있는 회사는 아니지만,
저는 오늘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저도 이제 아메리카노 마실까 라떼 마실까 고민 안 하고 라떼 먹을 수 있어요!
취업을 했지만 연봉과 복지에 대한 처우의 현실을 직시하고 마냥 기쁘지는 않았어요.
혼란스러운 마음에 우선 은행 가서 급여 계좌를 개설했어요.
(회사 측에서 원하는 은행이 있어서)
재직증명서가 없어서 바로 급여 통장을 개설하지는 못했어요.
기존에 있던 은행 계좌 카드를 분실해서 재발급받았어요.
월급 받으면 고용보험 적용이 돼서 인터넷으로 급여 통장으로 변경이 가능하다고 해요.
그렇게 부아아앙! 분노의 질주를 하고 집에 와서 엉엉 울었어요.
취업을 하는 것을 너무 바랐고 그렇게 되면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르고 방방 뛸 것 같았는데
나에게 과분한 회사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회사를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가치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더 이상 취준생이라는 방패로 살지 못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두려움도 크게 다가왔어요.
그동안 공부했던 스트레스, 합격/불합격을 기다리던 애간장, 스펙 하나 더 만들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활동들, 누구는 어디 회사 갔다더라 소식을 들으며 내 페이스를 유지해야 했던 포커페이스.. 여러 감정과 경험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는데 너무 서러웠고 속상했어요.
엄마에게 합격 소식을 알리고
바로 할머니에게 전화 와서 따끔하게 혼났어요.
"몇 년 동안 눈치 보고 얼마나 고생했니.. 처음부터 많이 버는 사람이 어딨어
그저 감사하다 하고 다니그라"
그 말을 듣고 또 울화통이 터져서 내가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건가 싶었어요.
또 바로 컨설턴트님께 최종 합격을 알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이직을 하더라도
경력이 필요하니 공백기 없애고 일단 아르바이트한다는 생각으로 일해 보라는 말을 듣고 힘을 얻었어요.
동생이 왜 그렇게 원하던 취업을 했는데 신나 보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고 소리 지르면서 행복해서 난리부르스를 쳐야 하는데 왜 시무룩하냐고 했어요.
엄마는 " 마음에 안 들면 더 잘 준비해서 가라 , 일 못하겠으면 당장 사표 쓰고 나와버려! "
이제는 저도 더 이상 공백기를 늘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입사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코로나라는 시국에 채용 공고도 손가락에 꼽는 마당에 제가 어딜 가네 마네 가릴 처지가 아니더군요. 채용이 워낙 없고 더 이상 공부할 의지도 없어서 취업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빛이 번쩍하고 정신이 확 들었어요.
비록 귀한 자식 키워줘서 고생했다며 꽃다발 보내주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아니지만
첫 술에 배부르냐...
조금은 아쉬운 시작이지만 저도 이제 월요병이 두려운 월급쟁이가 되었답니다.
그동안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던 저의 취준 생활을 응원해 주시고 조언해 주셨던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원하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계시는 취준생분들, 조금 늦더라도 가는 길이 맞는다면 비, 바람을 다 겪더라도 꼭 좋은 결과 얻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혹시나 제가 직장을 탈주해서 다시 취준생이 될 수도 있으니 저와 인연을 계속해 주세요!
취업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직장 생활이라는 또 다른 신세계가 열린다고 하니 막상 취업을 해도
다 끝난 기분보다는 또 다른 시작과 배움을 앞두고 걱정도 되네요.
정말 별거 아니고 되게 허탈합니다. 그러니 한순간의 성공만 바라면서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 선택권을 갖고 행복한 선택 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끝까지 뒤에서 응원해 주던 엄마에게도 제일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취준 일기를 마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