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 일기 06. 내가 물건인가 왜 저의 스펙을 따져요

by 라다


한국에서 초, 중, 고등, 대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을 입학하기 위해서는 수시/정시의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수시는 간단히 말해서 고등학교 성적 = 내신과 자기소개서로 지원서를 제출하고


정시는 내신과 수능 점수로 지원서를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내신성적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주 좋지도 않았다.

그 말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모의고사를 보면 등급으로 대충 수능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무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으므로 나도 고3 때 대학을 가기 위해서

정말 매일 밤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 문득문득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친구들과 모이면 걱정으로 가득한 대화를 나눴다.




대학을 못 가면 어떡하지


돈만 있으면 대학은 갈 수 있대


내가 원하는 과에 못 가면 어떡하지


그냥 아무 대학이라도 가야 할까


그냥 대학을 안 가면 안 될까





일찍이 수능은 보지만 수능 결과로 대학을 가는 꿈은 접고 수능 점수 없이 대학을 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입학사정관제라 해서 내신, 면접으로 수능점수 최저를 맞춰 고등학교 옆에 지방 사립대 외국어 전공학과에 지원서를 냈고, 운이 좋게 수시 1차에 합격해서 10월부터는 수능 공부를 포기했다.




대학을 합격하고 이제 대학을 가니 앞으로 공부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공부에서 해방되었다는 자유로움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참 어리석은 고등학생다운 생각이었다.







대학에 오니 공부할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또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내 자유라


꽤 대학생활을 즐기며 공부도 열심히 하며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벌며


남들 이하니까 나도 해야겠지라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대외활동, 교내 활동을 해 보면서 살다 보니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이제는 취업을 하란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하나의 관문에 도달했다.


취업을 해야 한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또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다. 대학에서 배운 것이 다가 아니었다.

대학은 취업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정말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대학에서 취업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고 취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럼 난 대학을 왜 나왔지? 취업을 잘하려면 대학을 가라더니 대학을 나오고 나니 취업을 탄탄대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대학은 취업을 하기 위해서 가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괜히 대학에게 화풀이를 했다.


졸업을 앞두고 처음으로 대외활동을 하면서 우리 학교 사람들이 아닌 다른 대학교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있었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나에게 없는 공통점들이 있었다.



해외에서 대학을 나왔고 각종 자격증이 넘치고 이런 활동 저런 활동을 해 봤으며 제2외국어를 전공이 아닌데도 취미로 이미 전공생인 나보다 더 알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여러 공모전에 수상한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을 난 처음 만난 것이다.


그때, 저런 능력을 스펙이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스펙이라는 것은 물건에게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사람도 이제 스펙을 갖춰야 회사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





그럼 나는 어떤 스펙을 갖고 있을까?




인강을 듣다가 강사님의 스펙을 과하게 요구하는

대한민국 취업시장의 기업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을 듣고

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말 스펙이란 것이 무엇이고 취업이란 것이 무엇이고

잘난 사람들 속에서 뭘 더 얼마나 잘나야 하는지 돈과 능력과 지식이 만들어낸 이 사회 속에서

스펙이란 것을 도대체 얼마나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무서운 순간이었다.


결국 회사는 회사의 이익이 되는 사람을 돈을 주고 고용한다. 직원은 회사를 위해서 능력을 갖춰서 그 능력으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줘야 한다. 회사가 직원에게 투자한 만큼 직원은 회사를 위해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닌데,

왜 취업을 하려면 영어 점수가 선택이 아닌 필수 능력이 돼야 하는지

매달 기업에서 요구하는 점수를 받으려고 한 달에 치킨 값 3마리 정도 되는 시험비를 써야 했다.




한국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왜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지

과연 정형화된 시험 속에서 평가된 영어 점수는 진정한 실력을 판가름하는데 일리가 있는지 의문만 늘어났다.




직무와 영어의 관련성이 얼마나 되며 업무 시 사용하는 영어 능력이 어느 정도로 요구되는지


그럼 차라리 업무상황에 적합한 인터뷰를 보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인터뷰도 면접 단계에 포함되었다. 일하면서 영어를 1도 안 쓰는 직무에서 당연시되는 영어 점수가 기본이 된 이 사회가 너무 미운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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