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때부터 버릇이 되어서일까. 숙소에 대한 비용이 아직은 부담스러워서일까. 그동안 여행지에서 내 개인실을 가진 숙소를 사용해본 적이 손에 꼽는 것 같다. 대여섯명의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을 사용했고, 덕분에 나는 숙소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경험했다. 마치, 숙소가 쉼의 의미 그 이상으로 함께 지낸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난 특별한 룸메이트를 추억해본다. 리스본에 도착했던 날, 나는 어김없이 예약해둔 저렴한 6인실 숙소를 찾아나섰다. 당시 생각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긴 여정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리스본행 버스에서 내려 내 몸뚱이 만한 캐리어를 끄는데 나를 힘들게하는 리스본의 울퉁불퉁한 길바닥이 원망스러웠다.
여러가지로 속상한 마음에 간단한 짐정리만 해둔 채 얼른 밖을 나섰고, 깜깜한 밤이 되서야 돌아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2층 침대로 올라서는데, 오늘의 1층 침대 주인이 도착한 모양이다. 아이패드가 켜져있었고, 수건과 옷가지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누군가 왔겠거니 하며 씻을 채비를 하고 화장실을 향했다.
씻고 돌아와 침대에 누워 뒤척이는데 1층 침대의 주인이 도착한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부스럭 짐을 찾는 소리가 들렸고, 옷을 갈아입는 것 같았다. 그러다 몇분 후 갑자기 알 수 없는 언어의 뉴스가 그녀의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이 몇신데, 누가 이어폰도 없이 유투브를 보는거지?' 예민했던 나는 삐딱하게 생각을 가진 채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아래를 향했다.
1층 침대로 내려온 순간, 나는 머리에 무언가 맞은 듯한 띵한 느낌을 받았다. 1층 침대에는 아름다운 회색빛이 도는 머리의 6-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님이 계셨고. 처음 마주한 나를 보고 인자한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내셨다. 옆 침대의 친구 할머님과 함께 두 분이서 여행오셨다고 한다. 두 분의 미소에서 오늘 시작한 두분의 포르투갈 여정에서의 설레임 혹은 행복감을 한아름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할머니의 침대에는 리스본의 관광 브로셔와 지도 여러권이 놓여있었고, 만년필 그리고 알이 큰 안경과 함께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눈 그 짧은 순간이 정말 나의 기억에 오래 남았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나의 60대와 그 때의 여행을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그 나이대의 나를 상상해본적이 거의 없거니와 굳이 생각해본다면 크루즈여행? 깃발을 따라가는 단체여행? 좋은 호텔에서 푹 쉬는 휴양? 정도를 떠올릴 것 같다.
그러나, 할머니를 만난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나 역시 60대가 된다면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처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님을 보며 용기를 얻었달까. 나이가 어떠하든 내가 하고 싶은 여정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은 여행을 하고, 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여정을 이어가는 용기가 너무 멋있었고,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할머님들과 함께 방을 썼던 3일동안 유쾌한 기운을 가득 받았다. 조식을 먹으며 호탕하게 웃으시는 모습에, 느리지만 함께 걸어나가시는 모습에, 주름 가득한 손으로 지도와 아이패드를 뒤척이며 다음날을 계획하는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절로 행복했다. 할머님들은 얼마나 즐거우셨을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여담으로 할머님의 아이패드에서 뉴스가 나왔던 건, 아마 깜빡 듣지 못하셔서 흘러나온 것 같다. 그때 삐죽한 생각을 했던 것에 죄송하고 ;) 나에게 기분 좋은 리스본에서의 시간을 선물해주셔서 할머님들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