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수씨 sans souci Feb 16. 2020

어쩌다, 암스테르담(Amsterdam)

43만원짜리 항공권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첫 만남.






Amsterdam, Netherland

첫 번째 │ 43만원짜리 항공권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첫 만남

2019년 12월의 기록


ⓒ Copyright 2019. sans souci. All rights reserved










사진 속 시간과 장면,

2019년 12월 28일 오전 8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그리고 일출



'떠날 곳' 이 필요한 때. 어떠한 분명한 목적지 없이 단지,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순간, 타이밍도 참 좋지. 나에게 마치 "그래, 어서 다녀와" 라고 하듯. 무심결에 Everywhere 로 설정해 돌려본 항공권 어플에서 43만원짜리 암스테르담행 왕복 항공권을 발견하게 된다.


나와 이곳 암스테르담의 인연은 이렇게 정말 '어쩌다' 시작되었다. 떠나기 전까지 나의 심리상태 변화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엉뚱한 타이밍에 충동적이고 결단력 있는 내 모습의 신선함에 감탄하다가도, 갑자기 밀려오는 걱정에 우울하기도 했다. 무작정 티켓은 끊었는데. 출발까지 2주가 채 남지 않은 기간만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암스테르담에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익숙하고, 편안히 쉴 만한 동남아나 갈껄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고민을 수록 여행 자체가 나에게 부담이 되어왔고,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관두었다. 이러려고 떠나고 싶었던건 아니였을테니 말이다. 관광지는 어디를 가면 좋을지, 무엇을 먹을지 여타 이전의 여행과 달리 하나도 찾아보지 않은 채 마음 속 작은 목표 몇가지만 들고 출발했다.







간만에 긴 기간의 여행이었던 터라 걱정이 많았지만,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어느덧 나는 경유에 도사가 되어있었고, 그저 비행기에 몸을 담기만 하면 어찌되었든 시간은 흐르고, 비행기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었다. '아 역시 떠나길 잘했어.' 긍정적인 기분으로 흐뭇하게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며, 여행의 시작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도착 직후의 시간은 다소 요란했다. 이른 새벽 공항에 도착해 정말 아무생각 없이 무작정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향했다. 시차 때문이었을까, 잠에 취했을까. 무슨 배짱으로 공항 밖을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이곳의 아침은 9시는 되어야 밝아온다는 사실을 깜깜하고, 인적 드문 중앙역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역에서 숙소까지 멀지 않은 거리지만, 칠흑 같은 밖을 보고는 나갈까 말까 정문 앞을 한참 서성이다 결국 해가 뜰때까지 이곳에 있기로 결정했다.


여자아이 혼자 중앙역에서 몸뚱이만한 캐리어와 함께 무작정 해가 뜨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뒤이어 새로운 기차가 간간히 들어오고, 드문드문 하차한 승객들이 어쩌다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이후 열차가 떠난 적막에 빠진 역사도 무서웠다. 속으로 너무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느라 쭈뼛쭈뼛 눈치 보며 플랫폼 이곳 저곳을 헤매었다. 결국, 역무원이 앉아있는 사무소 근처에 자리를 잡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린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출근을 위해 역 안을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가게들에 불이 들어오고, 역이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우연히 바라본 나는 탄성을 지르고 뛰쳐나갔다. 보랏빛으로 하늘이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 밝아서 기뻤다기보다, 보석같은 하늘이 얼어붙어있던 나를 사르르 녹였다.


여기가 몇 분전,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깜깜한 밖이라고 !?


원효대사의 깨달음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던 해프닝이었다. 짧았지만, 쫄보에겐 너무나도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마주한 암스테르담의 하늘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아름다웠다.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이곳의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기했고, 나를 자극시켰다.







이 날의 일출은 암스테르담 사람들에게도 특별했던 것 같다. 어디에 숨어있었던 건지 사람들도 하나 둘씩 나와 함께 이 그림같은 하늘에 감탄을 내지른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은 물론 일상을 시작하던 사람들도 모두 함께 하늘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는다. 이후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나는 변해가는 하늘 색이 또 좋아, 한참을 이 근방 밖을 쉽게 나서지 못했다.


이번 여행의 시작도 나답게 역시나 늘 조금 유난스럽고, 서툴렀다. 그러나, 지금 돌아와 나에게 오롯이 기억에 남는 건, 보랏빛 하늘로 인해 마구 쏟아져내렸던 행복감 같은 그때의 나의 뜨거운 감정들이었다. 금세 이곳을 좋아하게 될 것 만 같았고, 암스테르담으로 시작하길 참 잘했다며 곧 잘 적응할 것 만 같은 씩씩한 내 모습이 참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우연에서 오는 행복을 배웠다며 혼자서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여행도 나답게 잘 풀어나가길 다짐하며, 첫 여정을 시작해본다.


앞으로, 잘 부탁해 암스테르담 :-)





첫 번째 │ 43만원짜리 항공권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첫 만남

2019년 12월의 기록


ⓒ Copyright 2019. sans souci.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