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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공대생 Oct 08. 2019

서른

김애란 단편소설




'고진감래' :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행복이 온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 몸이 건강하고 젊을 때 고생스럽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늙어서 낙이 있을 거라는 옛 속담이다.


위 두 가지 구어를 봤을 때 본인은 아직 주위 사람들로부터 젊다는 얘기를 듣는 편이기에 고생의 끝이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과연 그 끝을 바라볼 즈음의 나이는 언제쯤 와닿게 되는 걸까. 쉰이 넘으신 어머니는 요즘도 전전긍긍 하루를 어떻게 연명할지 걱정으로 가득 찬 하루를 마주하고 계시며, 아버지는 늙어서 병마와 싸우느라 고생으로 점철된 일생을 보내고 계신다. 사람에게 닥치는 고생은 분명 강인함을 한층 더 쌓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는 말에는 부분 동의한다. 정작 그 고생을 버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느냐에 대해서까지 언급되었다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개의 어구만으로 무거운 몸을 지탱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도 잔혹하다. 좁아진 시야로 인해 주변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어떻게든 살 방도를 찾았을 때 그걸 공유할 생각보다 먼저 채가서 숨통을 트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낭만을 꿈꾸며 연대를 지켜내자는 말을 하기엔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전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 분위기가 팽배한 이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다가오는 고생을 마주할 용기를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서른'을 읽었을 때, 본인 역시 마주하고 있는 고생들이 흘러넘친다 생각할 정도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적에서 죄책감이 오르고 있었다. 기억 속에 자취가 희미해졌을지언정 본인 역시 타인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적이 있었단 걸 의미한다.


줄거리를 짧게나마 요약하자면, 서른이 된 화자가 예전에 독서실에서 인연을 가졌었던 언니로부터 임용고시 합격 소식을 들은 뒤, 이에 대한 화답을 편지로 적은 내용이다. 그녀는 언니가 이제 고생의 끝을 슬슬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고생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신이 생각한 대학생활은 여의치 못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아르바이트와 근로로 가득 채웠고, 졸업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해서 선택한 전공은 사회가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변두리의 보습학원에서 학원 강사로 지내고 있었는데, 집안에 큰 사고가 나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게 된다. 그러자 그녀의 옛 남자친구가 갑작스레 연락이 와서 그의 소개로 또 다른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 회사였으며, 눈 코 입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환경 속에 시달리게 되었다고생 속에서 일상을 보내던 찰나, 그녀는 자신이 가르쳤던 학원 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달아나기 위해 그 학생에게 회사에 대해 언급을 한 후, 그 회사로부터 나오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그 학생이 자살기도를 하여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재정적인 고생뿐만 아닌, 죄책감으로부터 우러나온 고생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작품 속 화자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보고 떠오른 대사이다. 겨우내 버틴 고생은 결국 또 다른 고생을 마주하고 있는, 몸과 마음이 자랐다기보단 끝끝내 버텨서 살아남은 미래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삶은 목표점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과도 같다. 밖에서건 안에서건 정해진 도달점이 보이기만 하면 안심하게 되지만, 이건 안심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하염없이 뛰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앉거나 탈진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지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에 젊음이 이토록 많이 낭비된다.


 별들은 빛을 발하다 결국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을 찾지 못하고 백색왜성으로 남거나, 초신성으로 폭발하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초신성으로 폭발한 별은 순간 가장 큰 빛을 발하지만 끝에는 블랙 홀로 돌변하여 칠흑 속의 어둠에서도 더욱더 깊은 어둠을 발하게 된다. 백색왜성은 빛을 잃은 채 그저 허공을 맴돌며 존재감을 서서히 지워간다.


우리는 모두 무궁한 어둠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길 잃은 별들 같은 존재인 걸까.


※마지막 두 문단은 Adam Levine의 노래 Lost Stars에서 착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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