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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공대생 Jun 06. 2019

갑을고시원 체류기

박민규 단편소설


 스무 살 끝자락 즈음에 뭣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고시원에 방을 얻어서 생활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젊었을 적 객기지 않았나 싶은데, 그때 내가 한 달 동안 거주한 방은 월세 27만 원에 2평 될까 말까 한 공간이었다. 방에 배치되어 있던 건 책상, 옷장, 그리고 침대. 그 좁은 공간에 그것들이 조밀 조밀 배치된 걸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울증이 걸리고도 남을 공간이긴 했다. 게다가 샤워실엔 바퀴벌레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했고, 화장실은 공용이라서 한 사람이 오래 있으면 바로 고시원 문을 박차고 나가 공용 화장실을 찾으러 가기 일쑤였다. 그때 당시 본인의 모습을 되새겨보자면, 대학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사람들과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었고, 점점 사회가 무서워지면서 시도 때도 없이 오한이 들었고, 다가오는 내일을 맞기 싫어서 빛을 쐬는 걸 꺼려 했다. 인생 끝자락에 다다르면 이런 삶을 사는 걸까. 아마 그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으리라고 짐작한다. 우스갯소리지만 그와 동시에 고시 공부는 할 게 못 된다는 판단도 그때 한 거 같다.


 박민규 작가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읽었을 때 정말 그 때가 아른거렸다. 읽기 무척이나 쉬운 문체 및 띄어쓰기도 한몫 했지만, 이야기 자체가 경험담에서 우러나온 듯한 묘사로 인해 읽다 보면 어느새 그때 당시의 풍경을 상기하게 된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삼류대학 학생인 주인공이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뿔뿔히 흩어져 살게 되자 갑을고시원이라는 곳에서 월세 9만원을 내고 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의 공간은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움직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비좁으며, 다리를 뻗기도 힘들어서 점차 나무처럼 딱딱해지는 기분을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들 소리를 죽여가며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가스도 배출하며 살게 된다.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게 되는, 소리소문이 없어지는 그런 공간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생활에서 ‘인간은 결국 혼자인 동시에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깨닫고, 동시에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에 젖는다. 그 와중에 주인공의 바로 옆방에 사는 사람은 진짜 고시공부를 준비하는 고시생이다 보니 워낙 민감한 탓에 오죽하면 필사적으로 방귀를 참아가며 지내야 했다. 그렇게 2년 6개월을 버틴 후, 주인공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까지 한다. 그리고 갑을고시원을 벗어난 뒤, 다시 그 때의 삶을 상기하면서 고시원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난다.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곳이긴 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환경이 그때 당시보다 더 나았으며, 그때까지의 과정이 다시금 생각을 반복해도 복받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때 당시 모습과 비교하면 양립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말할 정도로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소리소문 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슬픔을 삭혀냈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 아니, 살아남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거 같다. 여유가 있는 삶을 갖기까지 우리들은 혼자서 이겨내왔고, 혼자서 이겨내거나, 버티거나, 감당하지 못하고 차악을 택하는 사람들을 목격해왔다. 그 모든 과정들 속에서도 결국 허무함은 남아있긴 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살아남기 위해 붙잡고자 했던 매체들도 어느 순간 현재에 충실해지면서 점차 부질없어지는 경우도 적잖이 있었다. 그 모든 격정들이 의미가 없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현재의 것과 비교했을 때는 의미가 줄어든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결국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현재로 바뀌게 되고, 현재는 과거가 된다. 과거에 계속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 결국 세상의 이치이기에, 그 속에 머무르냐, 아니면 그 모든 의미들을 뒤로 한 채 앞으로의 의미를 찾아갈 것이냐, 그런 점들에 대해 이 소설을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고 느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아마 후자에 더 가깝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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