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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 데이비드 소라 Apr 03. 2022

집들이 No, 집알이 Yes

쓰레기 넘치는 집들이 말고, 알맹이만 남는 집알이!

10년째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학교 후배로부터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우리는 보통 집들이를 간다고 하는데, 사실 초대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선 집알이를 간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집들이는 집주인의 입장에서 나온 용어이기 때문이다. 집에 손님을 들인다. 줄여서 집들이가 된 것이다. 


손님은 새 집을 알려고 가는 것이니 집알이를 간다고 해야 이치에 맞다. 

그래서 나는 후배의 집에 집알이를 가게 되었다. 


나는 친구의 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 사람이 사는 공간만큼 그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취향과 규칙을 본다. 그렇게 집을 한번 둘러보면 왠지 그를 더 잘 알게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후배 집으로 향하며 즐거운 상상을 한다. 집주인 성격상 가구는 깔끔하고 심플할 거야. 게다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일상과 추억을 만들어 갈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초인종을 누르자 후배의 반가운 얼굴이 나를 맞아준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후배는 아주 분주해졌다. 손님맞이 하랴 음식 준비하랴 허둥지둥. 집기를 사용하는 모양이나 움직이는 동선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친구를 보는 나 또한 안절부절이다. 왠지 도와주어야 할 거 같고, 앉아있는 게 미안해 소매만 만지작만지작. 


내가 기대했던 건 앞으로 펼쳐질 신혼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 포부 등 여러 감정들을 도란도란 듣는 것이었는데, 집주인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집주인과 집의 궁합(?)을 보는 집알이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대화를 하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칭찬을 하고 짧은 근황을 나눈 뒤 빨리 내가 떠나 주어야 뒷정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마저도 조급해졌다.


1년 전 내가 집들이를 해봤기 때문에 그 고충과 수고가 눈에 그려졌다. 4-5명의 손님을 직접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굉장히 수고로운 일이다. 우선 얼마만큼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부족한 거보다는 남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요리계의 대모가 된 것 마냥 양껏 준비한다. 많은 양의 음식들은 다 소화되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그뿐 만이 아니다. 메인 요리는 한 두 가지 정도는 내가 요리를 한다 하더라도 식탁 위 차려진 구성을 보며 아쉬운 부분은 배달 음식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 또 먹고 남은 일회용 포장지들이 덩그러니 남게 된다. 손님들이 가져온 선물 꾸러미들도 너무 고맙고 감사하지만, 속 알맹이만 빼고 나면 거대한 플라스틱과 종이 포장지만 남는다. 집들이는 쓰레기 파티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정신없던 후배의 집알이가 있고 난 뒤 한 달 후, 또 다른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정식 집들이는 아니지만 이사 뒤 처음으로 가는 거라 집알이를 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함께 초대를 받은 S언니가 아주 멋진 제안을 했다.


 “우리 각자 먹을 음식은 각자가 가져가는 게 어때요?” 


그래 이거였어. 집들이에 초대하는 집주인도, 집알이를 가는 손님도 모두 부담에서 벋어 나는 방법! 손님들은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사서 가니 집주인은 메뉴 선택이란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고, 손님들도 한결 가벼워진 집주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과도하게 음식을 할 필요가 없으니 음식물 쓰레기도 줄고, 배달 음식을 시킬 필요가 없으니 각종 플라스틱 비닐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식사 후에도 각자 들고 온 용기만 쏙 들고 가면 되니 집주인은 설거지 및 뒷정리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집에 남은 밑반찬들로 김밥을 만들어 갔는데, 잔반 정리도 되고 도시락 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참, 각자 자기 스타일에 맞게 싸온 도시락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해준 언니는 다른 음식점에서 먹고 남은 용기를 재사용해 포장을 해왔다. 처음에는 용기가 너무 견고해 식장 자체에서 그렇게 포장을 해준 줄 알았다. 하긴 한번 쓰고 버리기에 아까운 플라스틱 용기들이 너무 많다. 집주인은 토마토와 계란덮밥을 저녁 도시락으로 준비했다. 나도 좋아하는 메뉴인데 설탕을 첨가하니 더 감칠맛이 살았다. 이렇게 요리 꿀팁도 얻어 간다. 


그리고 디저트는 내가 준비해 온 복숭아 3알. 집 냉장고에서 바로 가져온 것이라 포장재가 남지 않는다. 이처럼 환경과 집주인의 정신건강에 무해할 수 있는 집알이라니! 우리는 정갈하게 깎아놓은 복숭아를 둘러싸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집알이다운 집알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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