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by 저기요

그토록 염원했던 독립 후, 나는 정말 신이 났다. 드디어 혼자 살게 되다니! 자다가도 너무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혼자 사는 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새롭고 설레는 일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일단 너무 자유로웠다. 대낮에 맥주를 마셔도 되고, 밤새 유튜브를 봐도 되고, 늦게까지 자거나 새벽에 라면을 먹어도 되는 나만의 자유로운 일상! "뭐해?"라는 친구의 카톡에 밤늦은 시각 슬리퍼 차림으로 나가 편의점 파라솔에서 수다 떠는 것도 혼자 살며 처음 느껴본 여유와 낭만이었다.


7평짜리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70평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행복했다. 독립 초반엔 매일매일 뭘 해먹을지가 관건이었다. 요리라곤 파스타 몇 번 해본 게 전부였는데, 혼자 나와 사니 요리가 너무 하고 싶었다. 집 근처에 이마트가 있어서 주말이면 맥주와 요리 재료를 잔뜩 사다가 나를 위한 상을 차리는 게 소소한 재미였다.


주말마다 해먹은 파스타 feat. 맥주


혼자 스테이크도 굽고, 또띠아로 피자도 해 먹고, 김치전도 부치고, 이름 모를 요상한 요리도 많이 만들었다(버리는 것도 많았다). 그땐 내가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걸 몰랐다. 먹어줄 사람이 있으면 요리가 더 즐거울 것 같아서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응암동에서 산 1년 동안, 어림잡아 40명 정도의 지인들을 초대했다. 친한 친구도 있었고, 직장 동료와 선후배도 있었고, 친구의 친구도 있었다. 3명만 앉아도 꽉 차는 비좁은 접이식 식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곳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고기를 굽고, 음악을 듣고, 고민을 나눴다.


작지만 완벽한 내 공간.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서른 살에 혼자 사는 여자라니, 이 얼마나 멋진가. 내 자신이 왠지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몽롱한 착각에 취했던 시절이었다. 혼자 장을 보고, 요리를 보고, 사람들을 초대해 와인을 마시는 서른 살의 여자. 나의 로망이 현실이 된 듯했다.


오뎅탕과 이름모를 안주 feat. 소주


돌이켜 보면 꿈같은 시간이었다. 돈 걱정도 없었고, 결혼이 급하지도 않았고, 부모님 잔소리로부터 멀어지니 심신이 평안했다. 지금도 종종 그때가 그립다. 좁은 방 안에서 멍 때렸던 새벽, 집에서 <정도전> 보면서 맥주 마셨던 주말, 윗집 사는 사람의 핸드폰 진동 소리, 레시피대로 했는데 아무 맛도 안 났던 요리. 아침엔 불광천을 걸었고, 상암 cgv에서 조조를 보고 집 앞 순댓국집에서 낮술을 하기도 했었다. 응암역 주변 치킨집에서 포장해다 먹은 9000원짜리 치킨의 맛까지. 모든 순간이 설레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서른 살의 나는 온전히 혼자였고 책임질 것도 없었다. 훌쩍 떠났다 돌아와도 일상은 그대로였다. 현관 비밀번호를 겨우 누를 만큼 술에 취해도 다음날 숙취만 감당하면 됐던 날들이었다. 혼자이고 싶을 땐 혼자일 수 있고, 외로울 땐 언제나 함께할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꿈꾸던 싱글의 삶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응암동에서의 첫날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