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So beautiful, 마웅가누이

by 기혜선

“엄마는 틀렸어, 너희 먼저 가...아..아..”

나는 손을 뻗으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짓을 해 보였다. 아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갔다. 아이들도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마웅가누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에게 캠퍼 밴을 빌려준 교민 아주머니는 분명히 야트막한 산이라고 했다. 얼마 올라오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왜 벌써 죽을 것 같은지, 숨을 헐떡이며 눈앞에 보이는 벤치에 반쯤 누워 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림 같았다. 긴 백사장 끝에 우뚝 솟은 산이더니, 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바다와 백사장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만 보고 내려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우리나라 산과 비교해 이 정도면 동네 뒷동산쯤 되려니 했던 게 오산이었다. 해는 뜨거웠고, 경사는 가팔랐다. 무엇보다 내가 산을 탄 지 족히 10년은 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클랜드에서 23일을 보내고, 남은 7일은 캠퍼 밴을 타고 북섬 일주를 하기로 했다. 긴 휴가를 낼 수 없었던 남편은 캠퍼 밴 일주에만 합류하기로 하고 막 입국한 터였다. 없다가 나타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특히 산을 오르면서 몸을 쓰는 순간마다 남편의 존재감이 빛났다.


나와 아이들만 이 산을 올랐다면 어땠을까? 오클랜드에서 분화구를 보기 위해 마운트 이든을 올랐을 때, 아들은 중간 놀이터에서 기다리겠다고 선언했다. 마웅가누이 산에서도 나와 아이들만 올랐다면 우리는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체력 좋은 아빠가 나타나자, 등산은 승부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에게 도전이자 게임이 되고 있었다.


한참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이만 돌아 내려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내려오던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외쳤다

“Go for it!”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고, 여기만 지나면 쉬워진다며. 나는 배시시 웃으며 일어섰다. 절대 믿을 수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조금만 더 가볼까 싶어졌다. 오르지 않으면 만나지 못할 세상이 궁금해졌다. 커다란 수풀이 우거진 길로 들어서니 서늘한 공기가 흘렀다. ‘괜찮네. 올라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하자마자 다시 땡볕의 급경사가 나타났다. 역시 믿는 게 아니었다며 후회해도 별수 없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상인가 싶어 아이들과 남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뒤따라 올라오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So beautiful”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바다 저 멀리 작은 섬들이 점을 이루고 그사이 하얀 백사장이 보였다. 내가 씽긋 웃으며 몇 마디 나누자, 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그 앞에 서보라고 했다.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보라며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던 할아버지는 연신 “So beautiful”를 외쳤다. 나는 내가 예쁜 건지, 풍경이 예쁜 건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조금 더 오르니 아이들과 남편이 보였다. 왜 이렇게 늦게 오냐는 아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랑 지내던 20여일 동안 이렇게 상기된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신이 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잘 올라왔구나 싶었다.


우리는 천천히 내려와 근처 피자집에서 커다란 피자 한 판을 해치웠다. 다 먹고 일어서는데 팔에서 고운 가루가 만져졌다. 살펴보니 우리 모두 팔, 목, 남편은 양 볼에도 하얗고 고운 가루가 붙어있었다. 짰다. 산을 오르느라 흘린 땀이 뉴질랜드의 강한 햇볕에 말라 소금이 된 것이었다.

캠퍼 밴에 돌아와 씻고, 산에서 찍은 사진을 넘겨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워낙에도 짧은 다리가 이보다 더 짧을 수 있을까 싶은, 3등신의 땀에 절여진 아줌마 사진이 잔뜩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예쁜 척하며 별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줌마 사진을 지울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할아버지의 ‘So beautiful’은 정말 풍경에 대한 감탄사였구나.

그 뒤로 우울할 때면 나는 이 사진을 꺼내 보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우스꽝스러운 나. 기분전환에 이보다 좋은 특효약이 또 있을까 하면서.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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