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하늘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넓은 하늘 면적에 크고 두꺼운 구름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저 구름 안에 제우스가 살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두껍고 큰 구름에 연신 감탄했더니 마중 나온 교민 아주머니는 뉴질랜드를 구름의 나라라고 소개했다.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아이들은 그곳의 놀이터에 감탄했다. 아이들은 둥근 해먹 모양의 그네를 좋아했고, 그곳에 누워 하늘을 봤다.
“엄마! 저기 용이 지나간다!”
“어디? 어디?”
“저어기 구름 봐봐 용 같지 않아?”
“진짜네!”
조용한 오클랜드 마을에 쩌렁쩌렁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뉴질랜드 한 달 살기를 계획한 나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영어를 써볼 수 있는 환경 만들기, 두 번째는 밖에서 많이 놀기.
딸아이가 중1을 마쳤지만 나는 아이 둘을 변변하게 혹은 진득하게 영어학원에 보낸 적이 없었다. 우선은 학원에서 조성하는 경쟁이나 불안감이 싫었다. 그리고 영어만큼은 공부가 아닌 언어로 가르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뚝심 있는 기준과 머뭇거림 덕분에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는, 진짜 실력은 차치하고 그저 자신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자기 기준이 높은 아이들 성향상 아무리 내가 잘한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겸사겸사 추운 겨울을 피해 여행을 계획했다. 이왕이면 영어 쓰면서 살고 오자. 그곳 아이들처럼 놀아보자. 그렇게 정한 뉴질랜드 한 달 살기였다.
공을 차겠다며 나갔던 아들이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클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축구공부터 산 아들은 뜨거운 햇볕만 지나가면 공원으로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뛰어볼 수 없던 천연 잔디밭에서 축구할 수 있다며 감격하는 나날이었다. 저녁 준비를 해 놓고 공원을 나가보니 아들은 처음 보는 아이와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본 아들은 아이와 간단하게 인사를 하더니 달려왔다.
“엄마, 이 동네 애들은 엄청 신기해. 내가 혼자 공을 차고 있으니까, 같이 놀래? 하면서 말을 막 걸어. 그러더니 축구 잘한다, 축구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었냐, 그리고 하는 내내도 계속 잘 찬다고 해주더라.”
그랬다. 우리가 만난 뉴질랜드 아이들은 모두 그랬다. 숫기 없는 아들은 공원에서 매일 다른 아이와 축구를 했다. 가끔 혼자 놀고 싶을 때도 있다면서 나에게 SOS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말이다. 뭐라고 거절했냐고 물으니, 엄마가 곧 나올 거라고 둘러댔다고 했다. 아들의 잔머리에 웃음이 났다.
저녁 시간에 공원에 나가면 잔디밭에는 늘 아이들이 뒹굴었다. 아이들 곁에는 보호자로 보이는 어른이 있었지만, 야트막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말리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아이들만 걱정이 많았다. 저 옷 어떡하냐며.
한번은 공원 한편의 스케이트보드 시설물 위에서 7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잔디밭 위에 경사로긴 했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몇 명의 어른이 나서 말렸을 터였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사람들은 지켜보다가 ‘고!’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불안은 학원이 아니라 내가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들의 도전에 나의 기준으로 선택을 유도했던 건 아니었을까.
한 달 사이 아이들은 새까매졌다. 근처 공원에 매트를 깔고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놀았다. 나무는 올라가면 안 되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YMCA 나무 타기 프로그램에 다녀오고 커다란 나무를 놀이터 삼아 놀았다. 그러다 모르는 아이가 다가와도 스스럼없이 같이 놀았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영어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느새 딸아이는 나보다 앞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고, 매장에서는 스몰톡을 나누고 있었다. 어느날 딸아이가 내게 속삭이 듯 말했다. “엄마, 영어 어려운 거 아니었네.”
아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내게 농담처럼 말했다.
“어머니, 저를 뉴질랜드에 눌러 앉혀주시지 그랬어요.”
“네가 싫다며.”
뉴질랜드에서 살겠냐고 장난처럼 묻는 내게 한국이 제일 좋다던 아들이었다.
“어머니, 그땐 제가 철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엉엉”
우는 시늉까지 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크게 웃었다. 서니눅 공원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고 그네를 타며 폭신한 구름을 올려다보던, 우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