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워져야해! 그렇게 외치자고! 코코!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미겔이 부르는 "Tú me traes un poco loco Un poquititito loco". 한글로 번역하면 넌 날 미치게 만들지, 아주 조금 미친사람으로 정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 미겔은 정말 미쳤었다. 미친 아이였다. 음악에 미쳤고, 자유에 미쳤으며, 삶을 사랑하는데에 미쳐있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소년, 미겔은 음악이 금지된 리베라 가문에 속해 있지만 음악가가 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은 "El dia de los muertos" 라고 사자의 날, 즉 죽은 이들의 날이라고 해석된다. 가톨릭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많은 국가들에 이와 같은 행사들이 있다. 구대륙과 신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필리핀의 경우에도 All Soul's Day라는 모든 죽은 이들의 날이 있다. 이날도 영화 코코에서 본 것 처럼 돌아가신 조상님과 가족들을 찾아가는 날이다. 그래서 일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이 어쩌면 모두 다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는 아스테카 제국과 마야 제국이 공존하던 곳으로,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처절하게 동화되었던 곳이다. 스페인의 문화는 그들의 정체성인 언어, 종교, 생활 방식 등 까지도 스페인화 되었는데 특히 유럽 가톨릭이라는 종교는 그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l dia de los muertos, 죽은 이들의 날?
먼저,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은 이들의 날인 El dia de los muertos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날은 돌아가신 조상들을 불러 그들을 기리는 멕시코의 전통 축제이다. 멕시코 뿐 만 아니라, 중앙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이 날을 기념한다. 보통 11월인 위령성월에 축제를 연다.
영화를 보다 보면, 죽은 이들의 날이 마치 파티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통해 슬픔이야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살아가겠지만, 그 슬픔이 절망적이거나 끝이 아닌 느낌이 든다. 그 날은, 죽음과 소통하는 느낌이다.
축제는 죽은이들이 이승에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에 머문다는 내세관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10월 31일부터 제단을 꾸미고, 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무덤을 꽃과 선물로 장식한다. 유럽 및 다양한 가톨릭 국가에서도 위령성월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톨릭 신자인 나도 위령성월인 11월이면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방문하고,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오늘은 너, 내일은 나"라는 문구를 기억한다.
'죽은 이들의 날'은 원래 아스테카 여신에게 바쳐진 축제였다. 금빛 다리로 사용된 셈파수칠은 죽은 자들의 꽃이라고 불리는데, 이를 통해 죽은 이들과 살아있는 이들이 만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겔도 두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손들이 돌아가신 가족들을 초대하여 기념하는 날인 제사의 문화가 있다. 사자의 날에 사자들에게 마련하는 음식있다면, 우리에게도 제사를 통해 마련 하는 음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것이, 사랑과 정성이 담긴 밥 한 그릇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랑이 밥주더냐'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이제 당당히 말 할 수 있다. 사랑만이 밥을 준다고...
미겔의 가족은 뭉쳐다닌다?
코코 영화에서 미겔의 가족은 현세와 내세에서 모두 가족 단위로 뭉친다. 이야기의 중심은 가족이고, 그들의 연대는 매우 견고하다. 그리고 엑토르는 가족보다 음악을 더 사랑했기에 "잊어버림"을 통해 형벌을 받는다. 그래서 미겔의 가족에게 음악이란 곧 배신이며, 가족을 저버린 배신은 용서할 수 없는 무언가로 대치된다. 이들에게 가족의 의미는 매우 끈끈하다. 그래서, 가족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경계의 대상이 된다.
엑토르는 자신만을 사랑했던 자유인이기도 하면서, 가족들이 고통을 겪게 되는 원죄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가족이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음악 때문이 아니다. 책임감 없는 자유로움으로가족들을 아프게 했고, 똘똘 뭉쳐 살게 했다. 그리고 밀착된 가족들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파펠 피카도(중국의 전지공예와 비슷한), 알레브리헤(영혼의 인도자인 동물), 마리아치(거리에서 노래하는)를 통해, 멕시코 및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들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에르네스토 동상이 있는 중심 광장은 마리아치 광장이고, 마을 이름은 음악인들의 성녀 체칠리아의 스페인 버전인 산타 세실리아이다.
Socorro! 구해줘!
Coco의 이름은 도움이나 구해달라는 의미를 가진 스페인어 소코로(Socorro)의 애칭이다. 그리고 코코는 가족을 기억하며 'Recordame'(나를 기억해줘)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이, 나는 한 개인으로서 기억되지 않는 가족의 일부를 기억해야 한다는 정체성에 대한 발견으로도 해석되면서도 중남미 연구자로서는 스페인, 프랑스,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에 의해 잃어버린 멕시코의 모습을 기억해 달라는 모습처럼 중첩되어 나타났다.
가부장적 사회와 페미니스트 맞짱뜨다!
라틴아메리카, 특히 멕시코가 남성주의적 국가라는 말에 대부분의 중남미 연구자들은 고개를 끄떡끄떡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책임한 가장이 버린 한 가정은 대부분 여자들의 몫이 되었다. 제단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사진들이 여자들의 사진이라면, 이 가정은 늘 여자들이 돌보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남자란 '잊고 싶은 존재'가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다보면 멕시코의 페미니스트 작가 프리다 칼로가 나온다. 오죽 했으면, 코코의 가족에 프리다 칼로가 등장하나 싶을 정도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내용은 지난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는 그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음악경연의 모습이 마치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과 흡사하다는 점에 있다. 프리다 칼로가 "너는 그저 배경화면이나 되어라"하며 대단한 복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마 이멜다의 알레브리헤인 페피타 역시 멕시코를 상징하는 독수리의 날개를 한 재규어이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두 동물들을 조합해 환상의 반열에 들어 올린 것이다. 멕시코 국기에 그려진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 위기에 처한 주인공 소년을 구하고 내러티브를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이 영화가 특별히 겨냥하고 있는 소수 대상에게는 대단히 긍정적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코코 영화는 보물찾기와 같다.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 두고, 그것을 찾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멕시코가 국기에 그려진 독수리가 하늘을 날 듯, 이 세상에 사는 이들과 하늘에 사는 이들이 11월이면 만나 기뻐하듯, 살아있는 사람들과 행복하기를 소망하 듯, 코코는 그렇게 외친다. 분열과 어두움과 아픔과 소외로부터 "Socorro" (구해주세요)라고! 그리고 그것은 코코가 있는 한 현실 가능 한 일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