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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지윤 Dec 12. 2021

값비싼 나의 불행

결혼이라는 위대한 결정

아침 차리기 미션 퀘스트가 오늘도 열렸다. 첫 번째 스테이지, 남편의 밥상을 차려준다. 오늘은 남편이 “석학들의 연구와 기술이 집대성된 레토르트 곰국”을 먹었다. 딱히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먹는 모습을 나는 빈 속에 커피를 때려 부으면서 보았다.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나의 빈속을 나도 그냥 외면하고 커피를 마시는 거다.


다음으로 열린 스테이지2는 첫째의 유치원 등원 준비,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서 나가야 하니 자꾸 재촉하게 된다. 산만하고 정신없는 아들도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이것저것 챙겨 이내 나간다. 두 사람을 위한 별것 없는 아침을 차리고 이른 출근, 등원을 하고 나면 둘째의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시작한다. 아직도 어린 둘째는 차려주는 밥이 마음에 안 들면 투정 부리고 등원도 싫다고 떼를 쓰는 나이다. 어르고 달래고 씻기고 먹이고 챙겨 어린이집 앞에서 선생님과 인사를 하면 아침 미션은 마무리가 된다.


보통 게임 속 시나리오는 그런 퀘스트를 깨 부수고(?)나면 보상이 주어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상이라고 챙긴다고 하면 아침 내내 쌓아놓은 남겨진 그릇들과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을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고 지금 해치울 수도 있다는 선택 정도.


나의 애씀은 어떤 가치가 있을지, 눈에 잡히지도 성과나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 내 일을 매일매일 그저 비슷한 수준으로 때우는 것 같은 찜찜함이 느껴진다. 가치로 환산할 수 있지만 나의 애씀이 보람이 되는데도 노력이 필요해서 그냥 일상 속에 묻혀지는 나의 아침, 나의 하루의 시작을 오늘도 해내고 있다.


얼마 전 SNS에 글을 적었다. <비교적 순조로운 결혼과 그게 과연 감사할 일인가?라는 물음을 수 없이 던졌던 너무나 가혹했던 육아의 시간>이라는 글에 많은 지인들의 “좋아요”와 “공감”이 쇄도하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결혼을 하고 난 이후에 얼마나 그 생활이 복잡하고 힘들 수 있는지를 깨달은 모양이다. 다들 비슷한 걸까?


결혼 7년차.

나는 왜 결혼을 한 걸까? 왜 부모가 된 걸까? 내 선택이 가치 있는 선택이었는지, 이 생활이 고통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생각한다.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본의 논리로 하나도 이득이 없는 이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부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또한 이렇게 까지 해서 키워낼 일인지, 너무나 깊고 너무나 넓은 부모라는 삶의 자리는 절대 나의 깜량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물러야 될 것 같은데 왜 이제서야 그걸 알았는지 한 순간 한 순간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시간들의 연속이다.


또 감당하기 힘든 아이러니는 이 선택의 절반에는 분명한 나의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100퍼센트 타인의 의지에 의한 결혼이라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데, 성인으로써의 나의 선택이 집대성 된 이 결혼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마음껏 원망하지도, 불행해 할 수도 없다. 나의 선택에 대한 최선의 책임은 어떻게 져야 되는 걸까. 어쩌면 이토록 치열하게 불행에 대해 고민한 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행복에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혼으로 인생 망쳤다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항상 ‘탓’이 작용한다. 남편 탓, 시댁 탓, 부모님 탓, 자식 탓. 결론적으로 참 좋은 명분이다. 지금 나의 불행함은 그들로부터 시작됐다고 여기면 적어도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시간들과 나는 분리될 수 있다고 느껴지니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 이 글을 써내려 가는 이유는 새로운 관점으로 내가 선택한 나의 불행을 돌아보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생의 최대치의 값으로 산 나의 것이다. 내가 선택한 나의 최대치의 불행이라면 슬프게 들리려나.

그러나  어떤 순간도 그 자체로 전부는 아니듯, ‘불행’의 안에서도 여전히 긍정의 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앞으로의 나는 긍정의 언어들로 이 순간을 적어내려가고 싶다. 오로지 나의 선택과 마음가짐으로만 말이다.


어쩌면, 7년의 나의 결혼생활 끝에 적어내려가는 나의 글이, 우연하게도 7년이라는 긴 잠을 자야만 땅 위로 올라올 수 있는 어떤 곤충의 새로운 시작과 같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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