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일의 에피소드, 역시 치킨은 사랑이었어.
공교롭게도 1월 1일은 주말이었다.
새해라는 밝고 희망찬 바이브와 다르게, 나의 바이브는 여느 주말의 힘겨움을 이겨내야 하는 그런 주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참아보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지만 결국 설거지를 하면서 부부싸움을 했다.
가정주부의 육아+살림을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하면
직장에 단 두 직원이 있고, 한 직원이 일을 안 하면 그 일은 몽땅 다른 직원에게 와 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억울해도 어쩌겠어? 그럼 나가서 돈 벌면 되지,라고 생각해버리면 할 말 없지만(이라고 쓰고 소통하기 힘든 인간이라고 읽음)
육아와 살림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잘라 버리 듯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함이라면 기억하자,
그걸 해내야 하는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쉬고 있을 때 무임금으로 일하면서 자기 자신도 챙겨내야 하는 일을 하는 그 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는 것을.
하여간 원래 의도는 좋은 의도로 저녁 한 끼는 쉽게 해결하자는 마인드로 치킨을 시켰는데,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동의 절차를 거처
치킨도 고르고 , 네이버에서 검색 후 전화를 걸어 주문을 완료했다.
포장은 2천 원 싸다길래 “거기 00나라00공주 혁신점 맞죠?”라고 되묻기까지 하면서.
그러자 남편 “여기다 시켰어? 00점이 더 가깝잖아”라고 하니 서운, 지금까지 과정 다 같이 지켜보고선 왜 이제와서 거리 타령인가,
그동안 눌러온 힘겨움이 역류했다.
“정말 지친다, 내가 지금까지 다 결재하면서 물어보고 결재하고 나니까 여기 더 가깝다고 하는구나, 그럼 직접 시키지 그랬어”
“아니 그냥 여기가 더 가깝다고. 가깝다고 말도 못 해?”
“그니까 가까운데 왜 안 시키고 여기 시켰냐 이 말이잖아”
“아닌데? 그냥 거리를 말한 건데 왜 또 혼자 해석하고 말해?”
영양가 없는 소모전이 오고 갔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대로 말싸움을 하고 소리도 커지고, 아이들은 이미 안중에 없었다.
욕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그 지경의 감정에서 치킨이고 저녁이고 뭐고 서로 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
그러나 이미 주문한 그 치킨은 튀겨지고 있었고, 이윽고 약속한 20분이 이르렀다.
정말 싫지만, 남편이 받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에
더럽고 치사했지만 “ 시간 됐어”라고 말하자 남편도 정말 싫은 표정으로 나갔다.
5분이 지나자 치킨집에서 전화가 왔다.
“나온 지 좀 되어가는데 오셔야 될 것 같아요.”
“어? 남편이 나갔는데, 도착할 거예요”
10분이 지나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기 치킨집인데, 그런 주문 들어온 적 없다는데?”
이상하다, 싸늘하다. 핸드폰 주문화면을 다시 보니 아뿔싸.
00나라 00공주 진주 혁신점에 전화한다는 걸
00나라 00공주 전주 혁신점에 전화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갖다 줄 수도 없는 타도시, 우리 집에서 2시간이나 걸리는 곳으로 전화를 걸다니.
그토록 분노했던, 그토록 서운했던 감정이
극강의 수치와 당황으로 대전환을 맞이하면서, “여보 여보 치킨을 잘못시켰어! 어떡하지 진짜!”
“… ………..하아…..”
“여보 미안해”
“… 애들도 있으니까 그냥 하나 사갈게”
미쳤어. 미쳤어. 왜 이런 순간에조차 나 다운 실수를 해내는 건지. 나 자신이 싫어서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니 6살 딸이 옆에 와 한마디 건넨다.
“엄마, 왜 그렇게 축 처져있어?”
“… 엄마가 큰 실수를 했어. 치킨을 아주 먼 다른 동네에 시켰어. 아빠가 가지러 갈 수도 없을 먼 곳”
“아.. 그래서 처져있구나.”
남편이 돌아와 치킨을 열고 아이들을 먹이고 나한테도 한마디 한다.
“많이 먹어, 더 먹어.”
그날 아이들을 재우고 서로 이야기를 더 하면서 싸움이 아닌 대화가 오고 가니 감정이 풀렸다.
“나는 그냥 치킨을 던져주고 먹던 말던 방에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그런 실수를 해버리니까, 내가 안 먹으면 실수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할까 봐 그냥 먹었어.”
“그래 나도 안 먹으려다가, 실수 때문에 안 먹는 것으로 보이면 더 이상해서, 그냥 먹었네”
부부싸움 대환장 치킨 파티를 마무리하면서, 그래 묵은 감정도 날려버리니 속이 한결 나아지는 듯 했다.
치킨의 행방은?
이미 식을 데로 식어버린 그 치킨, 되팔지도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어서
사장님이 재료값만 받고, 정리해 주시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