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계절의 절기는 제 갈 길을 말없이 가고 있는데,
요즘 계절의 날씨는 사춘기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를 불안함을 안고 있다.
엊그제 여름에는 참기 힘든 무더위가 계속 되더니
벌써 상강(霜降)이 지나고 겨울 준비를 해야 하는 때가 왔다.
상강(霜降)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데, 가을을 즐기기도 전에 겨울이 온다는 말인가?
도대체 가을이 언제 왔는가? 그리고 언제 갔는가?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고 변하는 시기라 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는 절기에 계절을 느낄 여유가 없다.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라 생각하는데
겨울 준비할 여유를 주지 않는 계절에 숨이 가쁘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여름의 더위도 맛보고 가을의 단풍도 느끼면서
천천히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데 빠르게 지나는 계절에
준비해야 하는 마음만이 바쁘다.
나는 자주 여행을 다니지 않지만
집 주위에서도 가을이 되면 빨갛고 노란 단풍을 보면서
내 나름의 가을을 즐기기도 했었다.
즐겨하는 친구들은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라며
단풍으로 유명한 곳을 찾아 가을을 만끽하는데,
올해 가을은 예쁜 단풍을 볼 수가 없어서 많이 아쉽다고 한다.
며칠 전 퇴직한 선생님들과 함께 간 양평 중원계곡(中元溪谷)에서
물 흐르는 소리는 시원하고 활기가 넘쳤지만 단풍은 볼 수가 없었다.
단풍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어설픈 단풍만이 몇 군데 보일 뿐이다.
나무들이 단풍과 낙엽을 만드는 것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는데,
나무들도 뜨거운 여름을 보내느라 지치고
예쁘게 단장해야 할 시간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 많이 속상할 것 같다.
봄인가 하면 여름이고 가을인가 하면 겨울이고
우리나라도 이제 여름과 겨울만 있는 계절로 변한 것 같다.
올 여름에 힘들 정도로 무덥더니
이번 겨울에는 무섭게 춥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겨울 날씨가 영하 17~8도였을 때도 있었는데,
이번 겨울 날씨가 그 정도로 춥다고 하니
벌써 몸이 움츠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