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경력직의 이야기
“요즘 방영 중인 ‘마당이 있는 집’ 드라마 봤어?‘
“최근 스타트업 갑질에 병들어 가는 사람들 뉴스에 나온 거 봤어?’
...
“다 내 얘기 같아,”
아마도 이런 예를 들어 비유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거란 생각에 꺼낸 얘기다. 난 IT업계에서 디자이너로 팀장급 정도 근무를 해왔다. 사실 대학대부터도 다양한 인턴생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하며 살아왔다. 동시에 관련 스펙 및 다양한 활동을 이력서에 올리기 위해 피땀 흘리며 살아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요즘 많은 기업들이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 형태로 쪼개지면서 스타트업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아졌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다양하게 경험해 온 나는 어째서인지 큰 형태에서 작은 형태로 거꾸로 가는 듯 느꼈지만, 사실 업무 강도나 양에 있어서는 맞게 가고 있었다.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걸 다 해야 하고 (대표의 입맛에 맞게, 고객의 입맛에 맞게) 잘! 해내야 하는 만능꾼이 되어야 한다.
몇 년 전 처음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초창기 멤버인 동시에 스톡옵션 또 처음 밑그림을 같이 그려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표 마인드로 온 열정을 다 바쳐 열심히 일했다. 몸이 아파와도 수액을 점심때마다 맞아가면서(이 마저도 대표에게 비난받았다.), 체중이 7-8킬로가 늘면서, 불면증 따위 무시하고 미친 듯이 쏟아부었다.
하지만 2분기가 지났을 즈음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한 반응과 수익의 화살은 나에게도 꽂혔고, 점점 대표의 갑질을 심해져 갔다. 대화로든 뭐든 절대 풀리지 않는 대표와의 갈등, 그리고 실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 또 나의 건강악화로 결국 난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퇴사하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고민이 있었는지 모른다. 회사에 대한 책임도 책임이지만 지금 퇴직하는 나 역시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이직이 그리 쉽지만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대표의 폭언, 부모님의 만류 등.. 어느 순간 난 최악의 정신적 피폐 상태가 되었다. 우울증 점수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중증이 되었고, 거의 매일같이 죽고 싶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퇴사 후 밤낮 상관없이 매일같이 침대에 빠져 이대로 영원히 눈감기만을 바랬다. 이때엔 이런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웠고, 말해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가족들 연락도 피했고, 난 점점 더 과묵해지고 어두워져 갔다.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이직해도 어차피 그런 회사들 뿐이고 난 전혀 인정받지도 못하고 쫓기듯 또 퇴사할 거라는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요즘 취업하기란 중고급 경력직인 나에게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직 시 사실 물불 가리지 않고 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러다 보면 여지없이 또 인성이 멍멍이급인 대표들을 자주 본다. 근본 없는 갑질의 힘은 그들의 학위에서 나오는 걸까? 요즘은 인성이 뭐든, 노력이 뭐든, 그저 로봇 같은 명석한 두뇌하나 혹은 그저 내가 최고라는 배짱이면 다 되는 시대로 변해가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나는 갈수록 드라마 ’ 마당이 있는 집‘의 김태희역처럼 조현병 환자가 되어가는 듯하고, 뉴스 헤드라인의 ‘스타트업 갑질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인간들의 갑질이 담긴 행동과 자존감 갉아먹는 폭언을 던지는 면접들은 취업 전부터도 나를 엄청나게 지치게 한다. 그럼에도 에너지, 시간, 교통비를 소비하면서 어떻게든 이직하려고 발악하는 나 자신이 가끔은 끔찍이도 싫다. 갈수록 인문학이 뭔지, 도덕이 뭔지, 겸손이 뭔지 모르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그냥 외면하고 싶어 진다. 그저 숫자, 데이터, 실적, 순수익이면 다 된다는 듯한 이 사회는 내겐 너무나 공룡 같은 적이다.
분노나 슬픔에 떨려오는 몸을 붙들고 오늘도 다시 사회에 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