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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ug 16. 2020

엄마의 탄생

그렇게 엄마가 된다.

 

기필코 잡아야 한다.

새벽 4시.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 같았으면 선풍기를 내쪽으로 틀고 바람에 휘청거리는 모기가 오지 못하게 막았을 테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며칠 전 생후 50일이 갓 지난 쌍둥이 딸에게서 모기의 흔적을 보았다. 얼굴에 대여섯 방, 머리숱이 없는 머리통에도 대여섯 방. 완전히 모기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딸의 얼굴을 보고 나니 속이 쓰렸다. 한 방만 물려도 간지러워 참지 못하는데 고작 태어난 지 오십일 된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모로 반사 때문에 속싸개로 꽁꽁 싸매어놓은 터라 노출된 머리만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 긁지도 못하고 얼마나 가려울까. 내가 물린 것보다 더 아팠다. 아, 모기 녀석. 아기를 물다니. 차라리 남편을 물지.      


그 꼴을 보고 나니 모기의 존재에 대해 엄청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에라도 모기 소리가 들리면 전자파리채를 잡고 청각과 시각을 예민하게 날 세웠다. 기어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걸려든 모기를 보고 나면 딸에게 달려가 말했다.     


하나야, 하늘아, 엄마가 복수했어.     


이럴 줄은 몰랐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난 직후에도 나는 그저 그랬다. 임신중독으로 갑작스레 전신마취로 응급수술을 하면서 태어난 아이들의 얼굴을 못 본 탓일까. 코로나19로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들어간 아이들을 며칠간 보지 못했는데도 그다지 애타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퇴원을 하고 조리원에 들어간 첫날에도 조금 실감이 났을 뿐이었다. 아기를 안아볼 틈도 없이 조리원으로 왔고 조리원에서도 곧장 신생아실로 가버렸기 때문에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사진 한 장 씩 찍은 게 다였다. 조리원의 첫날이 나도 너무 낯설어 핸드폰을 열고 배내캠으로 아이들을 살폈다. 조리원에서의 이튿날을 맞이했고 첫 번째 모자동실 시간에 기어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에어컨으로 적당한 온도를 맞추고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게 방의 커튼을 쳤다. 컴퓨터를 열어 잔잔한 음악도 틀었다. 신생아의 귀는 트이지 않아서 음악소리 같은 건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틈만 나면 손을 씻었고 보이는 방 안의 먼지들을 쓸었다. 좁은 조리원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선을 다해 준비한 후 아이들을 기다렸다. 마침내 내 방으로 두 아이가 들어왔다. 강보에 쌓인 채 침대에 눕혀진 아이들의 얼굴을 뜯어보고 또 뜯어봤다. 너무 작고 인형 같아서 내가 안으면 바스러져 버릴 것 같았다. 차마 안아보지 못하고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볼을 찔러봤다. 너무 귀여웠다. 내가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둘이나 낳다니. 나 정말, 참 잘했다.     


아이를 처음 안아본 건 조리원에 들어온 지 삼일째, 아기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너무 작아서 혹시 무딘 내가 실수라도 할까 봐 손끝 발끝의 모든 감각을 살려 안았다. 배가 고픈지 내 가슴 쪽으로 입을 벌려대는 아기가 마냥 신기했다. 너무 작게 태어나 울 힘도 없어 끼잉, 하고 표현하고 말아버리는 아기들이 내 품에서 참새처럼 입을 벌려댔다. 모유수유에는 별로 의지가 없었는데 짹짹거리는 입을 보고 나니 의지가 불끈 생겨버렸다. 남보다 일찍, 작게 태어난 탓에 빠는 힘이 약해 바로 모유수유를 하지 못했지만 알람을 맞춰가며 유축했고 부지런히 신생아실로 날랐다. 쌍둥이를 먹이려면 남보다 더 애써야 했다. 날이 갈수록 아기들을 안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 시간만큼 애정의 크기도 무한히 커져갔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실전이었다. 3시간마다 알람처럼 배고프다고 하는 아기들을 번갈아 먹이다 보면 내 시간은 없었다. 특히 새벽에는 고역이었다. 30분씩 한 시간씩 쪽잠 자며 먹였다. 잠이 부족해 고달팠지만 아기들이 끙~ 하는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곧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배고픈 아기들을 울리고 싶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을 향해 기어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지쳐버린 채 소파에 앉아 한숨을 길게 푹 내쉬다가도 아기가 웃으면 나도 웃었다. 물론 내 마음과 다르게 살은 쪽쪽 빠져가고 있지만.     


아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재미있었다. 수시로 오만가지 표정을 짓는 것도 얼굴이 터질 듯 용을 쓰는 것도 신기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아기들을 보며 인간 진화의 과정을 곱씹었다. 새삼 인간의 대단함도 느꼈다. 아기의 울음소리로 욕구를 구분하고 수많은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인간의 축적된 문화는 얼마나 대단한가. 아주 오래전부터 쌓이고 쌓인 육아 스킬들은 나를 구했다. 육아는 1도 모르는 왕초보라 아기들이 잠든 시간에도 책과 유튜브를 전전하며 공부하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아기들이 커가면서 내가 해야 할 일도 늘어났다.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겨주는 것은 단순한 일에 불과했다. 동요를 삼십 분이나 이어서 부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말끝마다 –쪄용을 붙이며 재롱을 떨었다. 가장 걱정되던 똥기저귀 치우기 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우는 아기 달래는 법, 잠투정하는 아기 재우는 법에 있어서 나만의 스킬이 쌓여갔다. 울음소리로 아기의 욕구를 캐치해내는 능력까지. 무엇보다 애정.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들에 진심을 다해 마음을 쏟고 있다. 내가 매 순간을 공들여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었다니. 나는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임신했을 때는 마냥 두렵기만 했던 미래들.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까 봐, 아이들에게 얽매일까 봐,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아이들을 예뻐하지 못할까 봐 고민했던 것들이 작게 느껴졌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출산을 하고 난 후 내 마음이 세 뼘 정도는 더 자랐다. 아이가 자라면서 나 역시 자란다면 십 년 후쯤 아마도 나는 거인이 되어있을 것 같다. 모든 엄마들은 이미 거인 하나쯤은 마음에 꽉 채운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이런. 아기가 운다.

분명 밥 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다시 밥시간이라니.

육아의 시간은 내 마음이 자라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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