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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Feb 08. 2023

단풍이 전에 꼬부기

육지거북 이야기

단풍이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훨씬 더 작은 동헤르만 육지거북을 분양했다. 두 아이는 살아 있는 생명을 집에서 기르고 싶어 했고, 남편과 나는 반대를 하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선택하게 된 반려동물이 육지거북이다. 많은 동물 중에 육지거북을 고르게 된 이유는 게으름과 책임감 때문이다. 수생거북처럼 냄새가 나지 않고 물을 갈아줄 필요도 없고, 고양이처럼 털이 날리지 않고, 강아지처럼 매일 산책을 시켜주지 않아도 된다는 여러 이유로 육지거북을 선택한 것이다.


요즘 육지거북은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가족이 택배 상자에 배달되어 온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 보고 반갑게 데려오고 싶은 마음에 집 근처에 있는 파충류샵을 검색했다. 좀 더 크고 밝은 곳으로 골라 아이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에 들어갔다.


대부분 파충류들이 따뜻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네모난 사육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각 사육장에는 도마뱀, 진짜 뱀, 거북(육지, 수생), 개구리 등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미리 정해온 동헤르만 육지거북 쪽으로 갔더니 아주 아가, 중간, 더 큰 거북 등 자라온 시간만큼 크기가 다른 거북이 있었다. 작고 어린것이 예쁜 것은 어떤 동물이나 마찬가지라...... 큰 아이일수록 튼튼해서 기르기 쉽다는 주인의 말을 흘려들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거북에 눈도 있고, 등갑도 있고, 먹이도 먹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무조건 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작았느냐면 집에 데리고 올 때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초장이나 간장이 담겨 오는 소스통에 숨구멍을 뚫어 거북을 넣어올 정도였다. 아이들이 미리 지은 꼬부기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주인에게 설명을 들은 대로 사육장을 설치하고 바닥재(코코넛바크)를 깔고 은신처와 물통, 먹이통을 차례로 놓고 꼬부기를 넣어 주었다. 꼬부기는 얼마나 작은지 바닥재를 넘어가는 것도 힘들어 보였고 물통이나 먹이통에 들어갈 때 푹 고꾸라질 것 같아 아슬아슬했다. 아침, 저녁으로 여러 채소를 주어보았는데 상추를 가장 좋아해서 상추가 주식이 되었다. 잘 보이지 않는 입을 벌려 상추를 뜯어먹는 모습이 예뻐 꼬부기가 상추를 먹을 때면 온 가족이 사육장 앞에 붙어 쳐다보곤 했다.


그러다 3주쯤 지났을까. 사육장에 넣어준 상추가 그대로 마르도록 꼬부기는 상추에 입도 대지 않았다. 어쩐지 덜 움직이는 것 같고 잠을 더 많이 잤다. 3일 정도 지켜보다가 걱정이 되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여러 의견이 있었다.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 기생충 때문이니 구충제를 먹여야 한다, 잘 먹는 사료를 사서 먹여봐라, 토마토즙 온욕을 해봐라 등등. 검색을 끝낸 남편과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민간요법(?)을 다 해보았다. 그래도 꼬부기는 여전히 힘이 없었고 쳐졌다.


꼬부기를 데려오기 전에 검색해 보았던 다른 파충류샵으로 전화를 했다.(우리가 꼬부기를 데려온 파충류샵은 너무 불친절해서 몇 차례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단풍에는 이곳에 가서 데려왔다.) 주인은 친절하게 응대하며 거북이를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을 알려주며 그곳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단지 적극적으로 권할 수 없는 건 병원비 때문이라고 했다. 꼬부기는 10만 원을 주고 샀는데, 병원비는 8만 원 정도일 거라고 했다. 병원에 간다고 해서 꼭 낫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10만 원에서 8만 원을 빼니 2만 원, 이렇게 머릿속으로 계산하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우리 집에 온 아이인데 죽는 걸 그냥 두고 보겠다고? 8만 원을 계산한 거야? 머리를 흔들고 결심 끝에 차로 30분 거리의 동물병원에 갔다.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꼬리 쪽에 하얀 조약돌 같은 것이 보였다. 요석이라고 했다. 육지거북은 하얀 요산을 싸는데, 그게 잘 배출되지 않으면 뭉쳐서 딱딱하게 굳어진다고 했다. 꼬부기는 너무 작아 수술을 할 수는 없고 온욕을 하며 자연적으로 배출되도록 지켜보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안약을 처방받고 진료비 8만 원을 내고 나왔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온욕을 해주며 꼬부기가 나아지기를 기도했다. 잠시 나아지는 것 같더니 며칠 후 꼬부기는 하늘나라로 갔다. 손으로 세어보니 함께 한 시간이 한 달 남짓이었다. 괜히 우리 집에 와서 짧은 생을 마감한 것 같아 미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분이 많은 상추는 주식으로 적절하지 않단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여러 가지로 거북을 키우는 일에 미숙하면서 여리고 작은 아이를 데려온 것이 잘못이었다.


작은 아이는 울었고, 큰 아이도 상심했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걸 반대했던 나와 남편이 가장 슬퍼했다. 꼬부기도 없고 바닥재를 다 치워버린 사육장은 썰렁했다. 얼마 지나고 아이들은 빈 사육장을 보며 꼬부기와 같은 거북을 데려오자고 보챘지만 난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걱정이 되었고, 마음에서 꼬부기를 떠나보내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게 꼬부기가 떠나고 다섯 달이 지나고 난 후에야 단풍이가 집으로 왔다.


가끔 남편이 단풍이를 꼬부가 하고 잘못 부를 때면 엄지손가락만 한 귀엽고 예쁜 꼬부기가 떠오르곤 한다.

머무른 시간에 비해 더 큰 아쉬움과 미안함을 남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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