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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 Feb 04. 2022

내 생애 다시없을 두 번째 D-day

대망의 <출산> D-4일의 단상  

1. 얼굴에 대하여

오늘도 어김없이 어제 보다 좀 더 부었고, 좀 더 살이 쪄있다.

아침에 일어나 9시에 책상에 앉으면 테이블 위 거울 속에서 허연 보름달이 떡~하고 뜨는데 그건 바로 내 얼굴이다. 출산이 임박해 올수록 이 빈틈없는 만월은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어쩔 수 없는 만월이다. 옆얼굴로 턱선의 샤프함을 체크해보고 싶지만 역대급 턱살로 페리칸 같기도 하다.  



2. 배에 대하여

나의 최강 보름달을 작게 만드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나의 얼굴보다 세배나 더 큰 남산만 한 '배'이다.

남산 배로 말할 것 같으면 현재 가슴과의 틈을 1mm도 허락하지 않은 채 부를 수 있는 최대치로 불러 있는데, 그로 인해 몸이 20도 이상은 숙여지질 않는다.

다리 긴 펭귄이 된 것 같은 기분.

풀린 신발끈은 남편에게 부탁하지만 길어진 발톱은 차마 맡기고 싶지 않아 그나마 유연한 다리 근육을 한껏 활용! 최대한 다리를 들어 올려 아빠 다리를 만들고 몸을 옆으로 꺾어 깎으면 성공이다.

바디 로션을 바를 때도 정강이 부분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허벅지 밑으로는 불가능한 영역 같지만 에너지를 끌어 모아 "이얍!!!" 기합과 함께라면 후다닥 바를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과속방지턱을 만나면 배 안에 장기와 아이가 한꺼번에 푸딩처럼 내 배 안에서 탄력적으로 요동을 친다. 그 느낌을 줄이기 위해 신줏단지 모시듯 최대한 배를 두 팔로 감싸 안지만 으윽! 놀란 아이가 배 안에서 뭔가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순간에 쪼올깃 해 지는 남산 배!

앉아 있으면 허벅지 중간쯤 턱 걸쳐지는 남산 배 덕분에 다섯 시간도 내리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책상머리에서 2시간 버티면 용하게 되었다.




3.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첫째도 노산 턱걸이였는데 둘째는 노산 중에 노산이 된 지금의 신체 상태는 그나마도 5년 전의 내가 아니다. 첫째 때는 전날까지 엄마랑 장에 들러 피조개도 사고, 칼국수도 먹고, 심지어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건만 지금은 박물관의 작품인 양 한번 자리를 틀면 몇 시간이나 꼼짝 않고 있다. 오늘도 책상에서 두어 시간, 소파에서 두 어시간, 식탁에서 두어 시간 묵묵히 버티다가 배가 쫀쫀해지면 침대에서 한 시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만은 출산 후 다이어트와 운동, 건강관리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 캘리포니아 햇살을 받으며 핑크색 레깅스를 입고 실컷 달리는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조용히 웃는다.




4. 엄마에 대하여

결혼 전, 퇴근하고 집에 와서 롱부츠를 신은 다리를 쭉 내밀면 신발 밑창을 잡고 "밖에 많이 춥제?" 하며 벗겨주던 '엄마'가 내가 사는 집으로 왔다. 회사 일을 싸 들고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한다는 애가 맥주 페트병에 긴 빨대를 꽂아 아.아처럼 마시며 일 반, 술 반 하고 있을 때 '아이고...' 하며 백 마디, 천 마디를 삼키던 마음씨 좋은 엄마가 왔다.

엄마의 정리정돈 실력은 전문가 그 이상의 이상으로 금메달, 검은띠, 신의 경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이 정도면 90점은 하겠어~ 싶었던 우리 집! 오히려 90% 이상 탈바꿈되었다. 엄마의 매직 손이 닿은 곳은 반듯반듯 반짝반짝. 도저히 정리할 길이 없었던 잡동산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 쏙쏙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가셔도 이 세팅 그대로 두면 될 것 같다.

엄마는 첫째 손녀를 잘 보고 싶어 산후관리사 자격증도 따 놓으셨다. 덕분에 첫째 낳고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도 엄마의 초밀착, 전문가 케어를 받을 수 있었다. 둘째도 그 덕을 보고 싶어 미국까지 모셨는데 나의 5년과 엄마의 5년은 또 다를 테니 사실 걱정이 든다. 그나마(?) 제일 튼튼한 남편의 역할을 더 늘릴 생각이었지만 훨씬 발 빠른 엄마의 행동력으로 엄마가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차에 적응한 엄마가 어제는 가구를 또 하나 옮겨 놓았다...     



내 생애 다시 없을 그날이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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