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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구 aGu Jul 08. 2021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한정원, 『시와 산책』

시와 산책 (한정원)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펴내는 ‘말들의 흐름’ 시리즈. 말장난처럼 느껴져 퍽 앙증맞기도 하고, ‘흐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아 마음이 간다.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 『시와 산책』은 단연 돋보인다. 가는 책방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눈에 띄어 궁금했다. 가물거리는 기억이지만, 서촌에 위치한 ‘서촌 그 책방’ 사장님이 아주아주 애정 하는 책이기도 하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 때문일까. ‘고이다’보다 ‘머무르다’를 좋아하고, ‘머무르다’보다 ‘흐르다’를 좋아한다. 흐르는 것은 손에 움켜쥐기 어렵다. 그래서 때로는 허망하고 덧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흐르기 때문에,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에, 오히려 위안이 되기도 한다. 눈물, 시간, 세월처럼 흐르고 나서야 문득, 내게 오는 것들처럼 말이다. 


시를 읽는 마음, 시를 적는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여러 번 곱씹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일단 흘려보낸다. 그러다 문득, 잊고 살다가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를 때가 있다. 시인의 말이 섬광처럼 번뜩일 때가 있다. 꾹꾹 눌러쓴 그 문장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내게 닿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 무엇을 바랄 수 있을지, 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은 아름답게 걷고자 합니다. - 한정원, 『시와 산책』


흐르기 위해서는 우선 흘러야 하고, 흐르는 것에는 방향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안에서 밖으로, 혹은 뒤에서 앞으로. 그 방향을 알면 참 좋겠지만, 그걸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럴 때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그렇게 고여있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흐르다 보면 어딘가 닿게 되지 않을까. 가끔 이력이 나고, 가끔 찬연히 빛나며,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아름다운 걸음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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