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언젠가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훌쩍 흘렀지만, 그곳이라면 지나가 버린 어떤 기억과 표정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머물렀을까요. 겨울이면 외풍이 불어오고, 장마철이면 빗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마주한 창문으로 옆집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천장에는 듬성듬성 오줌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마당이 있고, 옥상이 있고, 포도나무가 있고, 무엇보다 추억이 있었습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잠 못 들던 수많은 밤 나를 지켜준 보금자리가 있었습니다.
학기 초마다 집에 관한 조사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사는 몇 번 했는지. 월세인지, 전세인지, 자가인지. 19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이었습니다. 세 들어 살던 동갑내기 친구가 우리 집 건너편으로, 그 옆 골목으로, 강 건너로 이사 다닌 경험은 저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실감입니다.
재개발이 여러 번 무산된 일도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조합 사무실로 부리나케 향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창문을 맞대고 살던 뒷집 아줌마의 수작으로 집을 너무 일찍, 헐값에 팔아버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건설사로부터 수당을 받았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모든 욕은 그 아줌마가 먹은 걸로 기억합니다. 십수 년 이웃으로 함께했던 정과 동네 인심은 돈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성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신기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너무 순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떠나고 오랫동안 떠나지 않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집이 헐리고 마치 전쟁이 난 듯 폐허가 된 곳이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는지,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버텼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내 부모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독한 사람들이라고, 그쯤 했으면 적당히 받고 팔지 혀를 찼지만, 정작 그 사람들 속은 모를 일이었습니다. 누구네 집은 얼마를 받았다더라, 이런 말들만 텅 빈 동네를 무성하게 떠돌 뿐이었습니다.
오래전 부모님이 처음 샀던 집의 주소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한 번쯤 그 동네에 들러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도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그곳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어떤 식으로든 바뀌고 변한 것도, 아직은 보고 싶지가 않은 탓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그런 마음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그곳을 떠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빽빽이 아파트가 우뚝 솟아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살았던 터전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가까이 살면서도 이상하게 갈 수가 없더군요. 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