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중편 소설에 자주 손이 간다. 두터운 장편 소설은 진득한 끈기를 요구해 빈번히 머뭇거리기 일쑤고, 단편 소설집은 어딘가 허허로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읽을수록 보고 싶은 책이 많아져 선택을 해야 하는 와중에 찾은 나름의 타협일 수도 있겠다. 가볍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중간의 어느 지점과 닿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 행위에서 한 권을 마친다는 건 꽤 소중한 경험이다. 성취감이 차오르기도 하고, 덮고 나서 글을 쓰는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다음 책을 향한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가끔은 분량과 관계없이 책을 고르던 때가 그립다. 겁 없이 대하소설을 탐독하던 때가 그립다. 소란한 마음과 엷은 책임감에 이제는 쉬이 그러지 못함이 아쉽다.
뭐가 됐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읽고 쓰는 동안에는 방황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에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 그 속에서 오롯이 나를 마주할 수 있다. 산다는 건 대체로 힘들고 가끔 좋을 뿐이다. 무력감과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잦고 어디로 흐르는지도 알 수 없다. 흙먼지 가득한 일상에서 주인공처럼 필사의 밤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주어진 일만 하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재미없는 게 우리 인생이지 않나.
그러니 오늘 밤에도 써야겠다. [...] 오늘도 달리고 있는 당신들의 흙먼지와 흙먼지 속에서 기어이 피어오르는 우리의 언어에 대해서. - 김이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작가의 말
주인공처럼 K 장녀도 아니고 가사노동, 돌봄 노동에 시간을 쓰는 사람도 아닌 나. 가족이 부담하는 굴레에서 아직은 자유로운 나. 읽고 쓰며 나에게로 가는 길을 생각한다. 나에게로 가는 길의 정류장은 어디일까. 그 정류장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정류장에 서서 무언가를 기다릴 수 있다면,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조금 덜 외롭지 않을까.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당신에게는 무엇인가. 마음이 꽃을 피우는 그 어떤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