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구의 증명』
누군가를 깨물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먹고 싶은 마음. 사랑일까.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나누고 싶은 것과 똑같은 행위일까. 아기가 꼭지를 물고 오물거리는 것처럼 본능에 가까운 걸까. 죽음은 또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를 대신해 차라리 내가 아프고, 내가 죽고 싶다는 건 어떤 사랑일까. 죽은 몸이라도 곁에 두고 싶은 건 어떤 심정일까.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 최진영, 『구의 증명』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한다. 눈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가고 다시 또 월요일이다. 일 년은 어떤가.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던 마음으로 우리는 또 저무는 한 해를 아쉬워하고 있겠지.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날마다 죽음에 다가간다. 평균 수명까지 아프지 않게 살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살다가 어느새 노화와 죽음이 내 눈앞에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린 어떤 마음일까. 더 사랑하지 못하고, 더 증명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려나.
쏜살같은 시간과 세월이 가끔 무섭다. 사랑하는 사람의 굽은 등을 보며. 얇아진 다리를 보며. 축 늘어지고 가늘어진 것들을 보며. 외면해왔을지도 모를 사랑하는 사람의 변화와 아픔을 발견하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어떤 식으로든 나와 관계한 사람의 죽음을 함께하는 경우도 그렇다. 오는 순서 있어도 가는 순서 없는 것이 생사라지만, 죽음 앞에 우리는 무력함과 허망함을 느낀다.
죽기 전까지 결코 알 수 없는 죽음과 사랑의 감정들. 미리 알고 싶지 않아도 가끔 떠올려 보고 싶다. 그 사람은 내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그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살아서 너를 기억하는 일, 증명하는 일은 사랑일까. 어렵다. 어렵지만 분명한 건 단 하나.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더 열렬히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