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과일을 알지 못하던 시기에 나는 과일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눴다. 거기에는 포도, 자두, 홍시처럼 씹으면 부드럽게 녹아 없어지는 액체류 과일(일명 물렁파)이 있고. 사과나 배처럼 씹어서 잘게 조각내어 삼키는 깡깡파 고체류 과일(일명 깡깡파)이 있다. 외할머니 댁 마당에는 그 분류에 속하지 못하는 과일이 자라고 있었다. 바로 무화과다. 어린 나이에 무화과는 과일이라고 하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생물이었다.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생겨서 온갖 심술이 다 그곳에 들어 있을 것 같고 과육이 물컹물컹하고 식감도 찐득대서 별로 였다. 명절 마지막 날에 외갓집에 가면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한답시고 땅에 떨어진 무화과를 돌로 열심히 찍어댔다. 외할아버지는 뒷목 잡고 쓰러질 듯이 호통을 치며 엄마와 이모에게 말했다.
“너네 자식들 좀 봐라. 저 비싼 무화과를 다 조사 놓는다(짓이겨 놓는다는 뜻으로 추정)!!!”
매년 시골에 가면 보는 나무에, 사방에 열매가 떨어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다. 감나무 밭 할머니한테 “아나 홍시 먹어라”, “아나 단감 먹어라”라는 말을 지겹게 들어온 손녀딸은 무화과가 감보다도 하찮아서 다들 안 먹는 거라고 추측했다. 무화과가 가진 희소성을 몰랐다. 땅에 떨어져서 생채기가 나도 시골 장에 가서 팔면 꽤 기분 좋은 돈을 만질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설령 그때 무화과가 얼마나 돈이 되는지 알았다고 해도 무화과를 맛있다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외국에서 물 건너온 멜론, 망고는 언제 한 번 맛보았으면 싶은 과일이었다. 선물로 들어오는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껍질에 최대한 가깝게 정성스레 잘라서 한 조각씩 천천히 먹었다. 하지만 무화과는 왠지 오래되고 낡아 보였다. 야채인데 과일처럼 먹어서 맛없던 토마토랑 비슷한 취급이었다.
딸기, 포도, 과일 통조림이 베이커리에 들어가는 과일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기를 지나 새로운 과일들로 만든 다양한 디저트의 세상에 발을 들였다. 거기서 무화과 파운드 케이크, 무화과 휘낭시에 등 무화과를 넣어 만든 베이커리를 맛보면서 무화과의 맛을 뒤늦게 배웠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과육과 혀를 간질이듯 자잘한 씨앗이 생으로 올려도 맛있고, 말린 무화과로 먹어도 맛있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사려고 보니 너무 비싸고 빨리 물러서 자취생 신분으로 마음껏 사지 못했다. 마음껏 사서 먹지 못하는 마음이 풀리지 못하고 박혔는지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먹고 싶은 디저트를 고를 때마다 무화과가 들어간 디저트를 골랐다.
무화과를 조용히 따뜻하게 사랑하다가 무화과가 흔한 튀르키예에 왔다. 외할머니 댁 마당에서만 보던 나무를 이곳에서는 길을 걷다가도 종종 본다. 매일 비슷한 동선으로 산책하다 보면 손바닥 같은 잎사귀와 혹 같은 초록색 열매를 매일 보는데 볼 때마다 “무화과나무다!” 하고 외치며 아는 척한다. 터키에 있는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무화과를 흔하게 먹어서 그런지 무화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말린 무화과, 무화과 잼을 정말 싫어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냉장고에서 물러지기 전에 소비되길 기다리는 무화과를 꺼내 먹는 유일한 존재다. 이 귀하고 맛있는걸 왜 안 먹냐며 하며 무화과를 입에 넣으며 바닥이 보이는 그릇을 야속하게 바라본다.
꽃이 움트려다 실패한 흔적처럼 무화과의 배꼽은 다른 과일보다 적나라하다. 배꼽을 중심으로 열매를 손가락으로 잡고 양쪽으로 갈라 먹는데, 마치 항문을 두고 엉덩이를 두 쪽으로 쪼개는 것만 같다. 더러운 생각에 밥맛 떨어진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무화과 한쪽을 입 속으로 넣고 꼭지를 남기고 베어 문다. 꼭지 부분은 제법 단단하고 달지도 않지만 그래도 아까워서 늘 꼭지를 최대한 적게 남기려고 앞니로 위치를 더듬는다.
무화과를 반 쪽으로 갈라서 안쪽에 발그레한 꽃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겉은 소박한 초록빛이거나 멍든 마냥 푸르스름한 보랏빛인데, 여는 순간 씨앗도 꽃도 아닌 반짝이는 화려한 구슬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무화과가 너무 소중해서 돌멩이로 짓이기고 빻아 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미안해질 뿐이다. 무화과는 새로 난 가지에서만 열매를 맺는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더 이상 가지치기를 해줄 사람이 없어 앞마당 무화과나무는 어느 순간부터 열매를 맺지 않았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외갓집에 안 간지 몇 년이라 무화과나무의 소식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따금씩 무화과를 먹을 때마다 그때 그 풍경을 떠올린다. 이제야 주지 못했던 사랑을 주며, 겨울이 오면 한동안 먹지 못할 테니 이번 주말에도 이번 주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무화과를 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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