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진짜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 월요일

by 혹시 모를 일

최근에 알게 된 Jeremiah Fraites라는 드러머 겸 작곡가의 'Tokyo'는 겨울 아침을 설레게 한다. 주말이 연달아 기다리고 있는 금요일 크리스마스 아침, 커튼을 걷었더니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같은 음악이다. 그 느낌 때문에 비록 크리스마스는 지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겨우내 아침마다 이 음악을 틀었다. 이 음악을 틀고 거실 커튼을 걷었는데, 정말로 눈 내린 놀이터가 보인다면 괜스레 눈물이 맺힐 것만 같단 생각도 해봤다. 왠지 모르게 나 홀로 집에 2에서 케빈이 가족과 재회 후 맞이한 크리스마스 아침이 떠오른다. 그때 안도감을 느끼며 엄마를 슬쩍 훔쳐봤던 기억이 난다.

'Tokyo'를 틀고 커튼을 걷었다. 그러나 차갑게 마른 놀이터가 여느 비타민 음료수 뚜껑처럼 앙상한 메시지를 보낸다.


'다음 기회에!'


실망이랄 것도 없이 커튼을 마저 촤악촤악 걷어낸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한 번 더 놀이터를 흘깃 쳐다보고 뒤돌아선다. 소복한 눈이 없으니 오늘도 별 다를 게 없는 겨울날 월요일 아침같지만 천만에. 오늘은 꽤 오래 기다려왔던 날이다. '음흠~ 음흠~ 따단, 음흠~ 음흠~ 따단' 거실에 퍼지는 음악에 흥얼거리며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김 서리지 않게 환기하는 법'대로 베란다 창문을 연다. 거실을 횡단하며 요쪽 저쪽 열고 닫고 하는데, 발치에 차이는 이불을 피해 움직이자니 거슬린다. 아니, 음악도 진즉에 틀었고, 이쯤 찬바람도 들고 하면 일어나셔야지. 베란다 문 여는 거 보더니 머리까지 이불 다시 덮던 거 내가 다 봤다. 여기 좁은 거실을 다 덮은 이불 모서리를 잡고 확! 걷어내 버리며


'엄마~ 쫌 일나요~!'

'씁! 춥다!'


엄마는 다시 확 이불을 낚아채 드러눕는다. 동시에 이불 안에서 신경질적으로 파닥거리다 옆으로 들어 눕는다. 정말로 일어날 맘이 전혀 없다.


'아, 지금 일어나야 준비 다 하지!'

'씁! 됐다! 어제 다 했다! 고만 좀 있어봐라'

'아, 그럼 그대로 입고 나가게? 아, 일어나~~!'


내가 다시 걷어낸 이불을 또 확 채가며 엄마는 진짜 오만상을 다 찌푸린다. 난 그래도 진짜 짜증을 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엄마가 또 짜증을 내니까 괜히 또 신경질이 난다. 사실 나도 이불 모서리를 잡는 순간 이미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는 말 곱지 않으니 오는 말 어쩌겠나. 좀 더 달래는 방식으로


'싸모님~ 이게 비행기 시간이 이리 보여도 공항엔 더 빨리 가야 해요~'

'....'

'싸모님~ 일어나셔요~'

'...'

'아!!!!! 엄마!!!!!'

'그래그래그래그래... 그래!'

'쭈쭈쭈, 오옳치!!!'

'아! 임마가!'


'퍽, 퍽, 퍽!' 두터운 겨울잠옷 위로 엄마가 그 작은 손으로 등짝을 내리치는데, 늙은 호박이 몽둥이에 맞아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이건 진짜 아프다. 진짜 아픈 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내가 위로 손을 꺾어도 아래로 손을 뻗어도 안 닿는 딱 애매한 위치를 정확하게 두들겨 때린다. 낄낄거리고 호들갑을 떨며 막 등을 만지려 하는데, 역시나 손이 안 닿는 그 애매한 곳이 쑤시게 아프다. 엄마를 놀리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이 응징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이 좀 다른 날일지언정 나하고 엄마가 달라지는 날은 아니긴 하다. 엄마는 또 끙끙거리면서도 척척 이불을 개어놓고, 내가 이사 들어올 때 선물해 준 회갈색의 리클라이너 소파 팔받침대를 손으로 퉁퉁 치며 앉는다. 나는 엄마가 개어놓은 이불을 소파 한켠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우유 유리병을 꺼내는데, 엄마가 씨익 웃으며 묻는다.


'야야, 이거 좋지?'

'어, 좋더라~ 우유 마셔요?'

'됐다. 난 커피. 이야... 소파 좋네...'


엄마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꼭 소파 왼쪽 가장자리에 앉아서 전동 리클라이너 풋레스트 부위를 올리며 생색을 낸다.


'지지징 지잉...'


또 생색내냐고 한 마디 하려다 올라가는 풋레스트를 보며 씨익 웃는 엄마를 보니 괜스레 쏘아붙이려던 맘이 사그라든다. 난 티비도 안 보고 소파에 앉을 일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그냥 내가 사도 되니까 엄마 집에나 들여 놓으랬건만. 커피를 어쩌나하며 우유병을 넣으며 보니 마침 동네 카페서 사둔 더치원액이 있다.


'따시게, 차게?'

'내 말 안 했나, 어, 저번에 그 티비에서...'

'어~ 안다안다안다~ 따시게, 어~ 따시게~ 건강하세요~'

'말 꼬라지... 다 키워봤자지, 봤자다~'

'어? 다 키워봤자지? 이거이거이거 뭐어지?'


어제 미리 출력해 둔 전자항공권이 마침 식탁 위에 있어서 집어 들고 팔랑거리며 낄낄거린다. 이제는 서른보다는 마흔에 더 가까운 아저씨가 이러고 있으니 문득 '료타'가 떠오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인데, '나름 노력해 봤지만 잘 안 됐다.' 싶은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이다. 언젠가 그 영화를 보고 나서부턴 내가 뭔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면 자꾸 료타가 생각난다. 나도 한 때는 작가를 꿈꾸었단 점과 어느덧 나이가 들어 작중 료타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빼고는 단 하나도 겹치는 구석이 없지만...


'딸깍'


한참을 낄낄거리고 있으니 검정 발뮤다 전기 주전자의 물이 끓는다. 엄마도 낄낄거리며 전자 항공권을 낚아채고선 더치 원액을 담아둔 컵에 물을 따라 붓는다. 피어오르는 수증기에 커피 향과 초콜릿향이 묻어나 뭉개거린다. 어떤 원두는 원래 이렇게 초콜릿 향이 나기도 하는걸까. 아니면 몰래 합성 향료를 첨가하는 걸까? 여하튼 신기하게도 이 카페의 더치커피는 초콜릿 향이 참 도드라진다. 그래서 이게 진짜 커피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물론 초콜릿 향료를 넣는다고 가짜 커피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카페 주인에게 향료를 넣은 건 아닌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이 신비로운 풍미를 신기해하며 커피를 마시는 편이 더 낭만적이게 느껴졌고, 누군가에게 이 신기한 원액을 선물할 때 '초콜릿향이 특이한 더치원액이에요.'라고 덧붙이는 순간이 좋다. 그래서 난 굳이 진실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채비를 다 해뒀었고, 엄마는 딸기 몇 개를 씻어서 커피랑 마신 뒤 얼추 나갈 준비를 마쳤다. 현관 엘리베이터 호출벨을 누른다.


'짐 다 챙겼지?'


휴직이 다가오는 동안 가장 큰 즐거움은 단연 '여행 계획 세우기'이었다. 엄마는 늘 비행기가 무섭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여기 서울에서 살아가기엔 벌이가 빠듯한 아들을 배려해 온 게 아닐까. 철없는 나는 고되단 말을 너무 자주 했던 것 같다. 또 스멀스멀 료타가 아른거린다. 다시 확실하게 못박지만 닮은 구석은 정말 거의 없다. 여하튼 엄마는 비행기가 무서워 죽겠는데, 내가 하도 졸라대서 억지로 가는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좋다. 정말 비행기가 무서운 들 어찌할 수 없다. 우리 가족은 값을 치른 일에 대해선 돌이킬 수 없단 걸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엄마가 놀러 올 때만 쓰임새가 생기는 리클라이너 소파 환불 안 했다. 그리고 사실은 아까까지도 엄마가 진짜 비행기를 너무 무서워하는데 억지로 가는 거면 어쩌나 찜찜했는데, 좀 전에 웃으면서 비행기표 뺏어가는 보니 내심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퇴근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곤 할 때엔 마치 내가 이 여행을 위해 휴직을 결정한 것만 같았다. 사실 나도 해외여행은 몇 번 못 가봤지만 그 서너 번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히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되어 큰 위로가 되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 떠날 여행이 또 그런 순간이 될 거란 믿음도 내 일상 중의 비극들을 견뎌내는데 꽤 큰 도움이 되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호감을 갖고 호의를 받는 그 경험은 비록 이런 나이지만 세상이 나를 받아들여준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그리고 2014년 당시엔 태국 물가가 낮기도 했지만 환율도 좋았다. 그래서 식당(물론 고급식당은 가보지 못했다.)에서 음식과 음료를 마음껏 시켜도 내가 얼마를 썼는지 딱히 따져보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해방감은 미처 형용할 수 없었다. 수십 년간 가정을 꾸려온 내 부모님도 집이 없는데, 나 역시 자산을 형성할 기회는 없을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내 삶에서 물질적인 목표는 표류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여행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기분으로 뭘 사 먹을 수 있으면 돈은 더 많을 필요가 없겠다.'라는 모호하지만 현실적인 목표도 생겼었다.

내겐 이렇게 좋은 경험이었던 여행에 엄마를 한 번도 데려가보질 못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에 관해서는 늘 마음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대학교 입학했던 해 3월, 금요일 학교 수업 땡땡이치고 금토일 강원도로 여행(흡사 무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나도 같이 안 데려갈래?'


라고 물었을 때,


'내가 뭐 하러'


라고 대답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땐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참 힘든 시기였다. 엄마한테 속상하라고 작정을 하고 뱉은 말이었지만 진짜 상처를 입은 엄마 표정이 사실 지금도 생각나서 갑자기 쿡쿡 맘이 아리다. 공항 리무진에 짐을 싣고 좌석에 앉으며


'엄마, 나 대학 입학했을 때 생각나요?'

'나지'

'나 그때 월정사랑 묵호항 다녀온 것도?'

'언제?'

'왜, 그 학교 땡땡이치고 나 여행 갔다 왔잖아.'

'아니 학교를 땡땡이를 쳤나? 아이고...'

'아, 왜 또~ 그건 지났고~'

'그래서 내가 학교는 집에서 다니라 켔는데, 남 말 참 안 듣지. 아니 그 비싸게 학교를 가서 땡땡이를...'

'아, 그땐 집에서 다닐 때였다. 그리고 그때 한 번만 그랬다아이가'

'한 번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아나. 문디야. 지가 공부 안 해놓고 학교 졸업하고야 공부한답시고 대학원도 갔제... 아이고~'

'아, 진짜 문디가 뭐고... 그리고 그 말 나쁜 말이라니까? 그리고 어, 공부는 내가, 어, 과외도, 어?'

'됐다, 됐다, 문디가 문디지, 뭐? 닌 맨날 엄마를 가르칠라 그러노! 네~ 하는 꼴이 없다, 없어.'

'됐다, 됐다, 맘대로 해라. 아 ,진짜...'


그러게. 엄마 하곤 늘 이렇게 틱틱거리기 마련이었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왜 이렇게 아련한 맘이 들고 괜스레 서글퍼지는 걸까. 어, 이런 게 혹시 철이 든다는 건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침에 커튼을 열 때, 비록 눈 내린 놀이터를 보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맺혔던 것 같다. 이 모든건 내가 료타를 벗어나는 중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난 이제 철이 들었으니까 팔짱을 풀고 마찬가지로 팔짱을 끼고 있는 엄마 팔 사이로 손을 비집고 들어가 엄마 손을 잡는다. 순순히 손을 잡혀주는 엄마, 혹시 그날의 '내가 뭐 하러'가 생각나서 괜히 승질내는 건 아니겠지?


엄마, 내가 미안해. 오늘도 미처 말로는 못했지만 그땐 진짜 미안했어.

엄마가 내 맘 알아줬으면 진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