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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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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an 17. 2021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 아들

오래오래 좋아해주면 좋겠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선다.

- 누구야?

- 아빠야.

- 이야아아아아~

쿵쿵쿵쿵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서우가 눈 앞에 나타난다.

언제 웃었는지도 모르게 나는 웃고 있다.

아마도 누구야? 서우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서로 두 손을 맞잡고 콩콩콩 뛰며 웃는다.

웃으며 서우가 여러 이야기를 해주는데 들리는 것도 있고 안 들리는 것도 있다.

저 아름다운 얼굴은 잘 보인다.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가면 따라와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한다.

회사에서 묻어온 스트레스, 잡다한 생각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간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거실에 나간다.


- 우리 놀자!

- 그래!

거실에 놓인 장난감과 책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던 서우가

 책 하나를 집어들고 읽어보자고 한다.


책을 들고 서서 뒷걸음질 슬금슬금 다가오는 작은 몸을 무릎에 앉힌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가만히 듣다가

어떤 페이지에서는 그림을 보고 먼저 반응한다.

단어 하나, 쉼표 하나 읽어주다가

적당히 건너뛰며 대화만 읽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코에 와 닿는 머리카락과 살 냄새를 맡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흙에서 피어나는 청보리의 새순처럼

말랑말랑한 두피에서 은은하게 달콤한 냄새가 난다.

흐읍- 한숨 길게 들이쉬고 한 팔로 서우를 꼭 안는다.


다 읽고 나면 딱 한 권만 더 읽자고 한다.

- 그러면 이거 읽고 이제 밥 먹으러 가는 거야

끄덕끄덕

책을 읽고 밥을 먹으러 간다.

평소와 달리 서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마주본다.

그래서인가 서우도 진득하게 앉아 밥을 잘 먹는다.

나중에 식탁에서 벗어나 왔다갔다 하는데

안 좋은 식습관인데 저거, 배불러서 그런가, 시간이 점점 늘어지네 등등

보통 일어나던 반응 대신

- 자, 와서 한 입 더 먹자!

가볍게 말하게 된다.

서우도 가볍게 와서 밥 먹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냠냠 먹는다.

서로 마주보고 씩 웃는다.


실감이 난다.

이 아름다운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

때로 모진 말과 거친 행동으로 눈물흘리게 해도

이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내게 변함없이 '누구야?'를 외치며 우당탕 달려온다.

가끔 물기 어린 청보리같은 눈으로

- 아빠가 정말 좋아.

하며 훅 들어올 때면 아...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무엇인가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난 행복해. 일까?


서우가 그랬다.

- 서우는 커도 서우야.

얼굴이 이뻐서, 목소리가 귀여워서, 말을 잘 해서, 섬세해서, 똑똑해서 서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서우라서 좋아하는 거라고.

있는 그대로의 서우를 봐달라고.

있는 그대로의 아빠를 좋아한다고.


- 아빠는, 나이 들어도 아빠야.

언제 어디서는 서우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좋은 아빠, 서우를 좋아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오래오래, 사이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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