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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an 14. 2024

웃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봄봄이, 선우의 웃음은 마력이 있다.

두리번 두리번하다 눈이 마주치면 씨익 하고 눈웃음을 친다.

조금 더 기분이 좋으면 몸을 살짝 비틀며 귀여운 짓을 한다.

내 마음도 살짝 비틀리며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채운 빗장이 모두 풀린다.


선우를 마주할 때면 살짝 미소를 짓고 바라본다.

그러면 나를 빤히 보던 아이가 웃음으로 화답해 주어서 처음에는 내가 웃는 것을 보고 웃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곁에서 우리 둘을 지켜보던 아내가 아이가 웃을 때 내가 웃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처음 내가 지었던 미소는 어느 정도 기대와 계산이 깔린 교활(?)한 웃음이었다면

아이의 웃음에 반응하는 순간, 내 웃음은 찐이다.


그 맛을 한 번 보게 되면 다시 또 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게 되는데...

콧소리라든가, 추임새라든가, 호들갑이라든가 등등

하여간 소위 말하는 주접을 떨게 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 내 모습이 어떤지는 보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 나를 찍은 아내의 영상 속에서 그냥 들어도 이상한 내 목소리가 더 이상해진 것을 보고 있으면...

약간의 자괴감이 들지만 

그래도 아이가 다시 웃어주면 모든 게 다 괜찮다.


희미한 미소조차 치명적이다

첫째 서우도 그렇고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아가며

이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심 비슷한 것을 할 때가 있는데

나는 이것의 상당 지분을 아이의 웃음이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이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 

웃음을 지키기 위해 밤잠을 줄이고, 체력을 깎아가며 온갖 투정과 보챔을 감내한다.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지만 아이의 웃음을 보면 

그래 이 맛이야!

하며 아이에 대한 사랑, 사랑에 대한 의지를 다잡는다.


사실 육아의 과정에서 100% 행/불행은 없다.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힘든 것은 힘든 것대로다.

아이의 웃음이 육체의 피로를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아이를 안고, 달래고, 노래를 불러주는데 큰 힘이 된다.

그렇게 괴로움에서, 도망가고 싶은 심경에 빠지지 않고

다시 한번 더 해보는 순간이 쌓이며

어제보다 단단한 아빠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어제와 오늘은 선우가 낮잠을 통 자지 못했다. 

잠이 들었다 싶다가도 눕히기만 하면 화들짝 놀라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눕히고 나면 

조금 자다가 안 좋은 꿈을 꿨는지 기겁을 하며 팔다리를 휘젓다 다시 깨고

이런 짓을 2시간 동안 계속 반복하다 보니 화가 났다.

얼른 재우고 나서 나의 일, 나의 여가, 나의 밥, 나의 잠을 챙기고 싶은데 

네가 잠을 못 자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

심정적으로는 아이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온 마음으로 환하게 웃어주는 저 작은 생명을 말이다.

다행히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어온 아내와 교대하고 나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나중에 아내에게 아이를 던져버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깜짝 놀라면서도

아이를 혼자 보면 그렇다고, 그 심정 잘 안다고 한다.

아내는 서우가 아주 어릴 때 홀로 육아를 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곳이어서

아내와 아이의 잠든 모습만을 보던 날들이 많았다.

아내가 삭히고 감내했어야 했을 괴로움의 일면을 엿본 느낌이었다.

이런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라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면?

출구가 없는 지옥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던져버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의 웃음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생명이 귀한 것이라는 말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내 실력은 아니다.

부족한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목이 타들어갈 때 누가 건네어 준 한 모금의 물처럼

한 발짝도 더 걷기 어려운 오르막길에서 살짝 밀어주는 누군가의 손처럼

아이의 웃음이 나의 육아를 아름답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이런 빙구미... 너를 어떻게 할까 ㅠㅠ

웃음을 설계한 생명의 위대함에 감복하며,

내일도 방긋방긋 웃는 선우의 귀한 하루와

조금 더 단단해질 아빠로서의 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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