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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K Jun 08. 2019

01 디자이너와 회사, 회사와 디자이너

제품디자인 취업 도전기_01

 대학시절에는 이번학기 과제, 다음학기과제만 끝나면 디자이너가 되는 줄 알았다. 결국 먹고사는 일임에도 뭔가 특별한 일을 하게 될것만 같은 느낌에 취해있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야 디자인이 뭐고 디자이너가 어떤일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취업이 안되기 시작하면서 디자이너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실력이 좋은 디자이너란 뭘까. 디자이너는 왜 필요할까. 회사에서는 디자이너가 어떤 위치일까. 나아가 디자이너에게 있어 회사란 뭘까. 제품디자이너로 취업에 도전하며 드는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철저히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서본 디자이너를 둘러싼 환경들에 대한 고찰이다.


디자이너란 뭔가?

회계사 자격증을 따면 회계사다. 글을쓰면 작가다.  디자이너는 뭘까? 포토샵을하면 디자이너인가? 일러스트를 하면 디자이너인가? 회사의 디자인부서에 입사하면 디자이너인가? 디자이너 자격증이 있는가? 디자인대학을 나오면 디자이너인가? 여기에 맞는 대답이 없어서 모두가 헤매는 것이리라 본다. 디자이너가 필요한건 맞는데, 누가 디자이너고 뭐가 잘된 디자인이며, 디자인 영역은 왜이렇게 다르고 복잡하냐는 것이다. 회사가 디자인팀을 운영해온 역사가 길고, 닦아온 길이 있다면 회사가 가진 디자이너에 대한 기준이 명확할 것이다. 그게아닌 회사에 디자이너가 들어가면 ' 남들에게 보여지는것들을 예쁘게 혹은 그럴싸해보이게 하는 일'들을 하게된다. 그렇다보니 디자이너는 철저히 소모품의 위치에 놓여지는 것이다. 정말 디자이너가 그런 직업이라면, 국내의 4년제 디자인대학들은 다 필요가 없다. 실무위주의 2년제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디터람스, 하라켄야, 제스퍼모리슨을 보고 듣고 배웠다.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세계는 깊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뭐냐에 대한 대답도 복잡하고 길다.

 나는 입사원서를 쓰면서 중계자로서의 디자이너라는 말을 자주썼다. 기술과 산업의 교량인 디자이너, 기술과 고객을 이어주는 디자이너, 산업과 산업을 이어주는 디자이너.. 등등 지원하는 회사의 성격에 맞게 바꿔가며 교량인 디자이너라 나자신을 소개했다. 어느정도 고민끝에 내린 내나름의 정의였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속 시원한 대답은 아닌것 같다. 예쁘게만하는 디자인은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 아닌것같고 그보다 뭔가 더 있음이 분명한데, 그 뭔가가 뭔지는 모르겠어서 쓴말이다. 그 뭔가를 쓰려보면 다 거짓말같고 그럴싸하게 꾸며내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뭐든지 예쁘게 만드는게 결국 디자이너의 일인데, 이를 부정하고 싶어서 뭔가가 더 있다 생각하고 있을수도 있다. 아직 대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회사는 학교가아니다.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말이다. 실제로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하다. 아마 디자이너 취업준비자라면 모두가 한번쯤 들었을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디자이너로 계약직 근무를 잠깐 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낀 말이다. 나도 그렇고 면접장에서 본 많은 디자인 취업준비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다른 디자인 직무에 지원하면서 배우겠다는 말을 많이한다. 이 말은 본인이 회사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말과도 같다. 디자인은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디자인대학을 다니며 프로젝트가 지나면 지날수록 성장을 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성장하리라 기대하며 하는 말이 <배우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디자이너는 회사내에서 소모품이다. 완성된 디자이너가 자신의 완성된 능력을 결과로 보이는 자리다.  따라서 완성된 상태에서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회사로서는 당연한 일이 될것이다. 다 소모된 디자이너는 필요가 없다. 성장을위해 또 학교를 찾아가든, 스스로와의 싸움을 하든 다시 소모될 실력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디자이너 말고도 많은 직군에서 느끼는 일일테지만, 디자이너들은 왠지 남과는 다른 일을 한다는 생각에 이런 공식이 스스로를 빗겨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기도 한다.  이런 착각은 입시든, 대학생활이든 일반적인 삶의 공식과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생겼을 확률이 높다. 나도 이런 착각에 빠져서 헛물을 켜왔고 지금도 때때로 잘못짚는다. 경력이나 포트폴리오와 맥락이 다른 회사의 직무에 지원했다 당연히 떨어져서 울적해지곤 했다. 그냥 포트폴리오가 좋으면 어느영역이든 가서 배우면 되지않을까 라는 느낌으로 학교에 지원하듯 회사에 지원해온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


모두가 헤맨다.

우리나라에는 공식처럼 모두가 다하는 일이있다. 대학입시와 기업공채. 그리고 이를 헤매지 않게 도와주는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는 수요가 많고 일반화 할수 있는 쪽으로 기울다보니, 디자인처럼 특수하고 비교적 수요가 적은 경우에는 이런 서비스의 특혜를 받기 어렵다. 디자인대학에 가려면 모두가 목매는 수학을 할 필요가 없다. 대외활동도 공모전도 남들이 하는 것과는 다르다. 디자인어워드와 회사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은 성격이 다르다. 디자이너 취업에 도움이 된다 보장되는 대외활동도 손에 꼽는다.  그래서인지 진로에 있어 헤매는 경우가 많다. 디자이너가 사회에 나가면 사람들은 본인의 공식에 맞게 디자이너를 가늠하고자 묻는다. 대학은 어디나왔고, 공모전은 뭘했으며, 토익점수는 얼마인지. 여기에 '인서울 몇위권 대학나왔고, 모기업 주관의 아이디어공모전에서 수상했고 봉사활동은 뭘했고 토익은 몇점이다' 라는 대답을 디자이너는 할수도 없고 디자이너에게 중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본인의 경력을 어필하기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찾아가야 한다. 이과정에서 당연히 헤매고 힘들다.  헤매다보면 '내가 왜헤매고있지? 남들다하는 공식대로 갈수도 있지않나? 내가 디자인이 그렇게 하고싶었던가?' 라는 생각을 하며 디자이너로의 길을 포기한다. 포기한다는 옵션을 제외하면 제품디자인, UXUI디자인, 시각디자인, 브랜드디자인 등등 수많은 갈래길 앞에 놓이게 된다. 세상은 디자이너의 전공을 구별하지 않는다.(일단은 잘 모른다.) 대신 포트폴리오를 구분한다. 그래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 식으로 여러 갈래길에 포트폴리오를 일단 던져본다. 하나의 디자인 영역에 올인하기에는 자리가 일단 별로 없고 그 영역에 대한 확신도 없기때문이다. 내경우에는 UXUI를 공부하다 제품디자인쪽으로 적성이 기울어버린 지옥의 케이스이다.

 

적성에 관하여

 나는 잘 만들어진 디자인이 주는 그 간질간질하고 묘하게 감각을 건드리는 느낌이 좋아서 디자이너가 되려 했다. 그리고 그런걸 만들고 싶어서 제품디자이너가 되고자 한다. 몇주를 고민해서 나온 디자인이 잘나오면 오랫동안 보고 여러번 다시보면서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에도 형편없는 디자인이 나오면 한없이 우울하면서도 여러가지 방도를 찾아본다. 이 과정이 괴로우면서도 절망적이진 않다. 그리고 불쾌하지도 않다. 그래서 이 정도면 적성을 찾았다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초중고 교육을 받으면 정말 많이 듣는말이 '적성'이다. 한국의 교육환경은 적성을 찾을수 없는 환경이기에 더 강조되고 있다고 본다. 디자인대학을 가면 다들 적성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과 다른일을 한다고해서 적성을 찾은건 아니다. 그냥 수학을 못해서 이거라도 하자 심정으로 디자인대학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입결에 맞춰서 디자인 세부전공을 택하게 되는건 대다수의 수험생들과 똑같다. 내경우도 시각디자인이 너무도 하고싶어서 디자인대학지망을 했으나, 입결로 인해 산업디자인으로 가게되었다. 그럼에도 시각디자인이 적성이라 생각해 UXUI를 계속 공부해왔었다. 그러나 적성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다르다. 다름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적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UXUI를 둘러싼 현실은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납득이 가지않는 일들이 많았고 결과적으로 흥미마저 잃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접하게된 제품디자인의 세계는 매력적이었다. 하던게 싫어서 다른것을 결정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않았기에 심사숙고를 하고 있고, 여전히 UXUI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로 남아있긴하다. 이는 왜나하면 제품디자이너 신입채용보다 UXUI신입채용이 훨씬 많아보이기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에 취업이 어렵다해서 평생 개발해갈 경력을 선택당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내 태도가 언제까지 살아남아 있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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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디자이너2년, 취업준비생활 반년간 느낀 점들을 정리하고있다. 그리고 그 어렵다는 제품디자이너 취업준비를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오늘도 한 회사의 최종전형에서 떨어졌다. 그렇게까지 하고싶은 일도 아니었고, 실무진면접에서도 이사람들과 나는 안맞겠구나를 느꼈던 회사였다. 그럼에도 불합격은 늘 속이 쓰리다. 제품디자이너 취업준비생들은 차고넘치지만 그들을 쓰려는, 혹은 그들이 갈만한 자리는 너무나 한정적이다. 오기반 불만반으로 앞으로의 과정이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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