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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D Oct 13. 2024

우실장과 웃기는 외야석

2막. 제주의 그라운드, 1루. ep4. 

차례.     


프롤로그.

서울의 외야석

   원아웃

   투아웃

제주의 그라운드

   - 1

   - 2

   - 3

다시웃기는 외야석

에필로그.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한 건 미선이었다.

우선 옷차림이 이상했다. 원래 미선은 후줄근한 옷을 주로 입었다. 살찐 체격은 아니지만 펑퍼짐한 옷을 입어서 전체적으로 둔해 보였다. 색상도 무채색 일색이었다. 어두운 곳에 가면 안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싸구려 옷을 입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비싼 옷을 입을수록 자신의 색깔을 잃어갔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 딱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로 결혼 이후 미선이 주로 한 일은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었다. 전업 주부로 아이들 육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버린 후에는 삶의 방향을 잃은 듯 표류했다. 화초도 키워보고 에어로빅도 하는 것 같았지만 금세 시들해졌다. 시들어버린 화초 같았다.

하지만 여기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여기선 주로 흰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흰 스니커즈 차림이다. 표정은 언제나 활기차다. 우 실장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고는 어깨를 툭 치면서 웃는다. 처음엔 무슨 수작인가 싶었지만 그게 말하는 방식인 것 같았다.

운전도 했다. 차는 오래된 SUV를 몰고 다녔다. 차 뒤에 타이어를 달고 다니는 마초 냄새 물씬 풍기는 차다. 원래 미선은 장롱면허였다. 우 실장이 몇 번 운전 지도를 해줬지만 전혀 감이 없었다. 좌회전과 우회전을 구분하지 못해서 우 실장의 속을 긁었다. 결국 주차를 하다가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아 뒤차를 긁은 후 운전대를 놓았다. 이 여자의 재능은 여기 까지라는 절망감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선 베스트 드라이버다. 제주도의 좁은 돌담길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잘도 다닌다. 가끔 손님을 픽업하러 가기도 한다. 저런 재능이 있었나 싶었다.

아무리 가족들이 달라졌어도 한 가지 그대로인 건 있었다. 바로 무능하다는 것.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말만 게스트하우스지, 사실상 가족 여관이라고 봐야 한다. 그만큼 손님이 뜨문뜨문 온다. 덕분에 우 실장은 장기 투숙객 신분으로 널찍하게 지낼 수 있다지만 이렇게 운영해서 과연 유지가 될까 걱정이 됐다.

유심히 살펴보니 대부분의 식재료는 뒤뜰에서 토마토나 채소를 농사지어서 해결하고, 닭도 몇 마리 키우면서 달걀도 해결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걸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래도 이건 아무리 봐도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대책 없는 가족들의 모습에 괜스레 한숨이 깊어졌다.

자연스럽게 잔디밭 벤치에 앉아 사색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객단가가 일인당 이만오천 원에, 방은 4인실 1개, 6인실 1개가 전부였다. 만실이 돼도 이십오만 원 정도다. 물론 이 숙소의 역사에 만실이란 없었다. 잊을만하면 손님들이 기웃기웃 찾아오는 정도다.

여기에 아침마다 달걀 듬뿍 넣은 토스트를 제공한다. 기분이 내키면 SUV로 근처 관광도 시켜준다. 이렇게 장사를 하면 안 된다. 좀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우선 가게의 손익을 비롯한 데이터를 뽑아서 분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돈이 안 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쓸데없이 넓은 거실을 줄여서 방을 더 만드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손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미선이었다. 미선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여기 마진율이 몇 프로요?”

이상한 걸 물어봐버렸다.

“네? 마진, 뭐요?
 미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말이 나온 김에 이어갔다.

“아니, 그 왜 숙소라면 수용률 같은 거 있잖아요. 그걸 기본으로 수익률을 계산해야 되거든요. 원금도 있잖아요. 투자 대비 수익률은 얼마인지, 얼마 만에 회수가 가능할지 등등. 지금은 그런 게 너무 낮아. 이러면 안 되거든.”

미선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리고 그 뭣이냐, 이런 영세사업자는 그만큼 입소문이 중요하거든요. SNS 홍보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인스타 같은 건 하나 있어요? 일단은 해외 우수 사례 벤치마킹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말하자 미선이 웃음을 터뜨렸다.

“손님, 벤치마킹요? 농담도 잘하시네. 역시 개그맨이라니까.”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기서 우 실장은 개그 캐릭터가 돼 버렸다. 진지한 걱정을 모두들 개그로 받아들인다. 답답할 노릇이다.

“그나저나 손님, 커피 좋아하세요?”

미선이 눈을 찡긋했다. 우 실장은 기가 막혔다.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남자에게 눈을 찡긋거리다니. 미선이 낯설게 느껴졌다.     

미선을 따라 돌담길을 이리저리 걸었다. 봄의 제주는 한 꺼풀 더 꽃을 피웠다. 유채꽃은 물론, 각종 이름 모를 꽃들이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그만큼 햇살도 강해졌다. 눈이 따가워 손으로 가려야 할 정도였다.

미선은 아무런 설명 없이 앞서갔다. 따라가는 것만 해도 벅찼다. 저 여편네가 저렇게 힘이 넘쳤나 싶었다. 헉헉 소리를 내면서 간신히 따라갔다. 감히 가장을 끌고 다니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하도 힘이 들어서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돌담길을 지나가 바다가 펼쳐졌다. 작은 해변 한가운데 조그마한 정자가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간단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들도 설치돼 있었다. 나름 허리를 돌리는 기구, 벤치 프레스 등 있을 건 다 있는 모양이었다. 기구들엔 편안하게 옷을 입은 할매들이 별책부록처럼 한 명씩 달라붙어 있었다. 할매들은 운동을 하는지 수다를 떠는지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미선은 운동하는 할매들과 인사를 주고받더니 계속해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할매들은 헉헉대는 우 실장을 보곤 뭐가 그리 재미가 있는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시켰는데 제주 방언이 심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수깡, 했수다, 같은 종결어미만 간신히 들렸다. 대충 눈인사를 하고 미선을 따라갔다.

미선은 해변가를 지나나 싶더니 갑자기 오른쪽 돌담길로 쏙 들어갔다. 배려심 없는 여편네 때문에 숨이 다 넘어갈 지경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곳을 가기에 사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따지려 했다.

“다 왔다!”

미선이 아이처럼 웃으며 두 팔을 쭉 벌렸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어느 곳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조악한 나무 간판이 보였다.

아일랜드 조르바?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아일랜드는 나라 이름 같은데, 조르바는 또 뭔지.

특색 없는 제주의 오래된 집이었다. 조그마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작은 집 세 채가 에워싸고 있는 전형적인 제주의 집이다. 미선은 그중 한 군데 문을 열더니 쏙 들어갔다. 우 실장도 쭈뼛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아주 작은 카페였다. 천장에는 전선이 그대로 감겨있고, 벽은 제대로 마감을 하지 않은 듯 예전 돌담집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지붕의 서까래도 그대로 보였다. 창틀에는 아기자기한 피겨들이 놓여있었고, 재봉틀처럼 보이는 선반 위에는 각종 책들이 꽂혀 있었다. 전체적으로 꾸미다 만 듯한 모습이었다.

테이블도 몇 개 없었다. 가게 안엔 딱 네 개의 테이블이 있었다. 그중 한 테이블에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가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미선은 단골인 듯 자연스럽게 창가 자리에 앉았다. 뒤뜰이 보이는 자리였다.

“손님, 아무거나 잘 드시죠?”

아니다, 까다로운 식성이다. 나로 말하자면 미슐랭 가이드 별 세 개짜리 식당을…….

하지만 미선은 대답도 듣지 않고 짧은 머리 여자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저 여자가 주인인 것 같았다. 짧은 머리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커피를 내렸다.

잠시 후 미선이 잔 두 개를 들고 왔다.

“하나는 커피, 하나는 감귤 샤베트. 뭐로 드실래요? 장기 손님이시니 제가 한잔 쏠게요.”

미선이 싹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샤베트는 좀 천박해 보일 것 같아 커피를 골랐다. 계속 쳐다보는 미선이 의식돼 한 입 가져갔다. 그런데……. 

“맛있는데요?”

깜짝 놀라 미선에게 말했다. 미선은 자기가 칭찬을 받은 듯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그쵸?”

정말이었다. 첫맛은 쓰지만 끝맛은 시큼했다. 입안에 은은한 이국의 향이 퍼졌다. 그동안 마시던 커피와 다른 맛이었다. 미선은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거 원산지가 어디죠? 에티오피아? 케냐? 아니면 남미 쪽인가.”

아는 지식을 긁어모아서 물었다. 하지만 미선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맛있으면 다죠.”

그런가. 괜히 민망해져 큼큼 헛기침을 하고 커피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어쩌다 보니 미선과 단둘이 앉아있게 됐다. 괜히 어색했다. 마누라 따위를 의식하다니. 원래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는데. 하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치 다른 사람과 마주 앉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남자니 대화를 주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럴 땐 주변 풍경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즈니스 대화의 기본이다.

“잠깐만요, 손님. 경치 감상하고 계세요.”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미선이 선수를 쳤다. 

미선은 짧은 머리 여자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둘은 어떤 사이일까. 설마 친구 사이? 그러고 보니 미선에게 친구가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선에겐 가족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 외의 인간관계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둘은 재밌는 얘기를 하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미선의 웃는 얼굴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좋아 보인다. 우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생각이 들킬까 싶어 커피를 후룩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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