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태어나기 3년 전 아빠가
아이야. 아빠는 태어나 가장 빠르게 달려가는 시기를 겪고있다. 이것저것 던져본 돌이 크게 한방 맞아 한번도 만져본 적 없는 돈이 통장에 있다. 대학 졸업 후 1년간 꼬박 모았던 돈 만큼이 이제는 매달 통장에 들어온다. 물론 이번 성수기가 지나면 다시 옛날처럼 검소한 삶이 시작되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내가 뛰고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차가 빠르게 달리는 중이라 나는 덤덤한 마음이다. 주변을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그래서 아직 어색하다. 아빠는 사실 가장 게으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도 참 많이쪘다. 매일 게임 생각만 하며 하루를 보낸단다… 하고싶은 게임도 많고 사고싶은 게임기도 아직 너무 많다. 여러가지 세금이나 짜증나게 했던 기자 생각하면 불안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그냥 모른척 하고 있다.
아빠는 정말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시작했다. 엄마가(아직은 네 엄마가 아니지만) 친구를 만나러 간 사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홍제천을 달리다 벤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옛날 옛적에, 아빠가 대학교 다닐 때에 자취방 창밖으로 보이던 아파트를 졸업 전에 꼭 사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야망이 넘치던 시기라 아파트가 보이는 창문에 여러가지 글귀를 붙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넘치는 야망에 아빠의 실력은 미치지 못했다. 결국 그 가격의 1%도 못모으고 졸업했다. 지금도 내 눈 앞 홍제천 주변에는 아파트가 높게 서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동산 가격이 미친듯이 올라 여전히 난 아파트 한채 살 수 없지만 그래도 시세의 5% 정도는 모은 것 같다.
군대에 가기 전인가, 다녀온 후인가… 더이상 하염없이 걷기나 하며 길에 시간을 버리지 않기로 다짐한 적이 있다.뭐가 그리 들을 노래가 많았고 그리 할 생각이 많았는지 아빠는 어릴때부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몇시간동안 걷곤 했었다. (신기한 건 엄마도 어릴 적에 그러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날 그렇게 걷는게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걷기를 그만뒀다. 그 다짐을 한 이후로 정말 그렇게 걸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신기하지? 문득 궁금하다 혹시 지금의 나는 그때 밤새 걷던 소년과 달라지지 않았나? 자전거를 다 타고 조금 일찍 자전거를 반납한 후 집까지 걸어가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항상 너희에게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살고있다. 이건 내가 대학생이던 때부터 변함없는 생각이다. 너희가 볼 수 있도록 많은 흔적을 남기며 걸어가겠다. 더 멋지고 더 끝내주는 작품을 만들어가겠다. 너희는 훗날 내가 만들어갔던 것들보다 더 멋진 것들을 만들며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