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나이 42세로 나왔습니다."

저는 만 31세였고, 임신은 나중에 하려고 했습니다.

by 아가 대장군

“검사결과...난소나이 42세로 나왔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잠시 말을 멈췄다. 위로가 될 문장을 찾는 사람처럼.


희망은 남겨두고 싶지만, 수치는 이미 방향을 정해버렸다는 걸 아는 목소리였다.




나는 만 31세였다.

당시, 나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임신은 계획에 있었지만, 우선순위의 맨 위는 아니었다.


그 무렵의 나는 중앙정부의 국방 분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계약서를 읽고, 바다 건너 움직이는 일정들을 조율하던 자리였다. 작은 직급이었지만, 숫자 하나하나가 각 나라의 국방력과 우리 방산 기업들의 한 해 무기생산량을 조율하는 것을 보는 위치였다.

K9자주포 폴란드 수출 출고식 (출처: 연합뉴스)

일은 막 재미있어지던 참이었다.

(일하는 게 재밌다고 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회의실에서 오가는 영어 문장들, 지도 위에 표시된 낯선 도시들, 일정표에 빼곡히 적힌 해외 방문 계획. 나는 그 판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었고, 그 속도가 좋았다. 공공의 구조 안에 있었지만, 시장의 맥박이 바로 옆에서 뛰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산업 안에서, 더 빠르게 달리는 자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멋있지만 가난한 철밥통이 아닌, 결과로 평가받고 나에 의해 내 통장과 미래가 결정되는 자리. 지원하는 쪽이 아니라 직접 뛰는 쪽. 나는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공무원으로 남으면 안정적이었다.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아기를 품을 수 있고, 육아휴직은 길며(3년), 제도는 나를 지켜준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AI의 도움으로 정리한 육아휴직 제도 비교표) 아직까지 임신/육아휴직 관련 제도는 공무원이 더 좋은 편인 것 같다.


하지만 보호받는 삶은, 나에게는 조금 느리게 다가왔다. 그 안정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속적인 가난"이라는 삶의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추후에 별도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사기업은 다르다. 속도가 다르고, 휴직은 짧고, 입사 직후 임신은 누군가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전쟁 같은 환경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전쟁터가 궁금했다. 나의 꿈과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을 기대했다.


그래서 임신은 나중에 하려고 했다. 직업여성으로서의 제약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검사는 그저 확인을 위한 것이었다. 내 몸도 내 계획처럼 정렬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42.

내 난소의 나이.

숫자는 건조했다. 건조해서 더 잔인했다.


의사 선생님은 시간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직 기회는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겠다고. 조심스러운 말이었지만 단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제야 눈물이 났다.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마음 안쪽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계획이 틀어진 게 아니라, 내가 믿고 있던 질서가 깨진 느낌이었다.


31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가벼워졌고, 42라는 숫자가 몸처럼 무거워졌다.


병원을 나와 혼자 걷는데 다리가 이상하게 느렸다. 평소라면 머릿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이 돌아갔을 텐데, 그날은 아무 계산도 되지 않았다. 그냥 속이 텅 빈 채로, 무너지는 기분만 또렷했다.


하지만 금세 걱정이 가득한 생각들이 밀려왔다. 지금 당장 임신을 시도하면, 나는 안전하다. 제도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직을 미루면 커리어는 멈춘다. 반대로 이직을 선택하면, 임신은 변수가 된다.


나는 늘 리스크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리스크라는 걸.


집에 돌아온 남편이 물었다. “괜찮아? 같이 못 가줘서 너무 미안해. 어땠어?”


42라는 숫자가 입안에서 한 바퀴 굴렀다. 말하는 순간 무언가를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시간을 과신했다는 것, 내가 너무 멀리 보려 했다는 것, 혹은 내가 조금 뒤처졌다는 것.


설명하기 어려운 알 수 없는 수치심 같은 감정이 들었다. 몸의 나이를 공유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독했다.


나는 결국 숫자를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조금 서두르는 게 좋대.”




그날 밤 이후, 검색 기록이 차곡차곡 쌓였다.

- 난소나이 42

- 난소 나이 의미

- 임신 가능성

- 이직 후 임신

- 육아휴직 좌천


"30대인데 난소나이 40대로 나왔어요...희망이 있을까요?"

"이직하고 언제부터 임신해도 되나요?"

"이직 시도 중에 임신해버렸어요ㅠㅠ 도와주세요"

"육아휴직 해야할 것 같은데 회사에서 너무 눈치보여요.."


출처: 블라인드


글들은 솔직했고, 솔직해서 잔혹했다. 이직과 임신을 병행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도 있었지만, 대부분 같은 말로 끝났다.

"하루라도 젊을 때 애부터 가지는 게..."

"이직은 미루시는 게..."

"가족보다 중요한 게 있나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임신을 미뤄서...애가 안 생기네요"


나는 지금껏 시간을 자원처럼 다뤄왔다. 계획을 세우고, 순서를 정하고, 속도를 조절했다. 사람은 준비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몸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며칠 뒤, 나는 시험관 시술, 배아동결 준비를 위한 상담을 예약했다. 임신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가능성을 보관하기로 했다. 공무원으로 안전하게 아이를 갖는 대신, 조금 더 위험하지만 더 멀리 갈 수 있는 길을 택하면서.


나는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동시에 더 커지고 싶었다.


나는 31세였고, 내 난소는 42세였다.

그 사이의 11년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글쓴이의 말] 난소나이 검사, 무엇을 보는 걸까요?

‘난소나이’라는 표현은 의학적 용어라기보다는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에 가깝습니다. 보통은 난소 예비력(Ovarian Reserve)을 평가하는 검사 결과를 이렇게 부르곤 합니다.

산부인과 방문 시 대표적으로 확인하는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AMH(항뮐러관 호르몬): 현재 남아 있는 난자의 ‘양’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
* AMH 수치가 “난소나이 42세 수준”이다 = 현재 AMH 수치가 평균적인 42세 여성의 범위와 비슷하다는 의미
* 예를 들어, 31세 여성의 평균 AMH 수치가 3~4 ng/mL라면, 42세 여성의 평균 AMH 수치는 0.5~1.0 ng/mL 정도로 낮아질 수 있습니다.
(※ 수치는 병원·연구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FSH(난포자극호르몬): 난소 기능이 저하되면 높아질 수 있는 호르몬

중요한 점은, 이 수치들이 곧 “임신 가능 여부”를 단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시간의 여유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참고 지표가 됩니다.
예비 임신을 계획 중이시라면,
•AMH 검사 (간단한 피검사)
•기본 호르몬 검사 (간단한 피검사)
• 배우자의 정액 검사
정도는 미리 받아보셔도 좋습니다.

결과가 좋든 아니든, ‘모르는 불안’보다는 ‘아는 선택’이 덜 흔들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수치가 기대와 다르게 나와도, 그건 잘못이 아닙니다. 몸은 평가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조건일 뿐입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