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선택은 늘 자유처럼 말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조건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임신을 먼저 택할 경우에 안정적으로 펼쳐질 길이 보였다.
제도와 보호는 준비되어 있었다.
육아휴직은 길고, 직장은 복귀 후 내 자리를 약속해 줄 것이다.
“지금 낳기 딱 좋네.” 나를 위한 주위의 수많은 조언들.
하지만 문제는 임신 자체가 아니었다.
그에 따르는 멈춤이었다.
나는 내 분야에서 이제 막 속도를 이해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계약서의 문장들이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이해관계로 읽히기 시작했고, 해외 출장 일정은 그냥 외국에서 하는 회의가 아니라 하나의 사업을 만들어 내는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낮은 위치였지만, 글로벌 안보시장의 움직임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이게 정말 멋있는 일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남편이 물었다.
“만약 지금 아이를 가지면, 커리어 때문에 많이 아쉬울 것 같아?”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많이까진 아니고… 평생 조금은.”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우리는 둘 다 웃지 못했다.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아이 먼저 낳고 다시 시작하면 되지.”
다시.
그 단어는 지나치게 가볍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여자의 경력에는.
잠시 멈추는 일은 생각보다 큰 사건이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판은 바뀌고, 언어는 변하고, 사람은 교체된다.
복귀는 돌아오는 일이 아니라 다시 증명하는 일에 가깝다.
저녁을 먹다가, 나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 아직 좀 더 자라고 싶은 것 같아.”
남편이 대답했다.
“이미 충분히 큰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말고.”
내가 말한 ‘큼’은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가 서있는 자리의 밀도였다.
아직 단단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엄마가 되기 전에, 최소한 나로서의 자리를 확보하고 싶었다.
그 마음은 열정이 아니라 불안에 가까웠던 것 같다.
계속해서 한 번, 또 한 번 생각했다.
임신을 먼저 하면 후회할까.
이직을 먼저 하면 더 크게 후회할까.
결국 선택은 옳음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덜 견디기 힘든 후회를 고르는 일처럼 느껴졌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우리는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어떻게 할까?”
“모르겠어.”
“그래도 이제 정해야 할 것 같네.”
“그러니까.”
대화는 짧았고, 결론은 없었다.
대신 공기가 무거웠다.
혼자서 이렇게 말해보기도 했다.
‘아이를 포기하는 게 아니잖아. 순서를 바꾸는 거지.’
말은 합리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순서를 바꾸는 일조차, 왜 이렇게 비극적으로 느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동시에 멈추고 싶지 않았다.
두 문장은 함께 할 수 있는 사실처럼 보였지만, 나에게는 모순이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애기가 커서 물어보면 뭐라고 하지? 왜 조금 늦게 낳았냐고.'
애기가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이 있을까.
'엄마가 겁이 많아서?'
사실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잃고 싶지 않은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너에게는 아마 진짜 이유를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아.
수많은 생각들 끝에 나는 결국 이직을 먼저 하기로 했다.
안전 대신 가능성, 보장 대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한 속도.
대담하기보다는 절박한 결정이었다.
아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결국엔 아이를 위해 나를 먼저 지키겠다는 철저한 계획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계획이 아니라 믿음에 가까웠다.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 뒤라면, 어떤 선택도 덜 무너질 것이라는 믿음.
나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선택은, 늘 그렇듯이, 조용히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글쓴이의 말] 임신을 미룰 때, 무엇을 고려하면 좋을까요?
저처럼 커리어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임신을 지금 할지 조금 뒤로 미룰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때, 현실적으로 점검해 보면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1) 난소 예비력 수치(AMH 등)
(2) 배우자 정액검사 결과
(3) 현재/이직희망 회사의 육아휴직 제도 및 사용 가능 시점 (중요 ㅜㅜ)
(4) 시험관 시술 시 평균 소요 기간 - 배란유도부터 임신확인까지 한 사이클 당 평균 4~6주 소요
(5) 개인의 체력과 정신적 여유
특히 시험관 시술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자극 주사, 난자 채취, 수정, 배아 이식까지 최소 한두 달 이상이 필요합니다.
한 번에 성공하지 않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라는 말은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시든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임신을 먼저 선택해도, 커리어를 먼저 선택해도, 그 결정은 그 시점의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배우자의 지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늘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그때그때 견딜 수 있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