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오피스텔에서의 호르몬주사
우리 신혼집은 전용 9평 남짓한 귀여운 2룸 오피스텔이었다.
둘이 동시에 움직이면 부딪히기 쉬웠고,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 건조대는 거의 매일 펼쳐져 있었다. 거실은 지나다니는 통로였고, 화장실은 하나였다.
아침은 늘 문제였다.
우리 부부는 회사까지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같이 출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함께 집을 나서기 위해 동시에 출근 준비를 하려면 누군가는 5시 50분에 일어나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이 더 오래 잘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작은 집이라, 알람이 시작되면 방이 쩌렁쩌렁 울렸다.
시간 맞춰 일어난 남편이 안쓰러운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여보, 주사맞을 시간이네.”
나는 꾸역꾸역 메마른 눈을 뜨며 이불을 밀어내고 앉았다.
아직 어두운 새벽, 엉금엉금 기어가서 앉은 소파에서 주사 키트를 힘없이 뜯었다.
“오늘 몇 번째야?”
“다섯 번째.”
“잘 참고 있어...”
“… 고마워.”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난소가 부풀어 오른다는 게 이렇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일인지 몰랐다. 배는 묵직했고, 허리는 둔했다. 3킬로가 금방 늘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걸린적 없는 변비는 거의 고문 같았다. 진짜 선홍색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런 건 정말 처음 봤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 행사 준비는 계속됐다.
하필 당시 업무 성수기였는데, 2주 연속으로 밤 11시까지 행사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돌아오면 새벽 1시가 다되었다.
눈만 잠깐 감았다 뜬 것 같은데 금방 다시 다음날 5시 50분이었다. 겉은 말끔한 정장을 입었지만, 속은 과호르몬과 변비로 가득찼다.
주사를 맞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꿈이 뭔지 알아?”
“뭔데?”
“화장실 두 개.”
화장실 두 개는 부의 상징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변화 같았다.
누군가가 먼저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삶.
몸이 아픈 날에도 순서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갖고싶다.
고통 속에 수많은 주사바늘들을 비워낸 후 난자 채취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16개 채취, 12개 수정.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금방 산부인과를 방문해 통보 받은 최종 결과는..
동결 배아 10개.
5일 배아는 없고, 모두 3일 배아였다.
(5일 배아가 일반적으로 착상에 더 유리한 것으로 알고있다.)
3일 배아 중에서도 배아 등급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나의 소중한 배아들 중에 상급은 없었다. 나는 병원을 나와서도 한참 결과지를 바라봤다. 왠지 여자로서 나도모르게 가져왔던 아이를 품을 수 있다는 자부심? 성스러움? 같은 느낌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꽤 비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어떻게 위로해줘야할지 많이 고민하는 듯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고 알수없는 미안함도 느껴졌다.
“괜찮을 거야. 지금 배아로도 충분할 거야. 근데 여보가 마음이 불안하면 한 번 더 하고 싶어? 나는 여보가 어떤 결정을 하든 여보 마음을 지켜줄게”
착하고 따뜻한 나의 소중한 남편. 그의 예쁜 말이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나… 다시는 못 하겠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모든 피로가 실재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나보다.
남편이 말했다.
“여보, 그럼 안 해도 돼. 이미 충분히 했어.”
불안했지만, 희망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도 있다. 액체질소 안에 열 개가 안전하게 잠들어 있을 것이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소중한 나의 존재들. 잠시 앞으로 나아가도 괜찮겠다고 말해주는 나의 희망.
며칠 간 애써 마음을 다잡은 후, 조용히 이직에 대한 생각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어쨌든 가능성을 얼려두는 데 성공했고, 가능성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조금 단단해졌다.
이제 드디어 다음 발걸음을 움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