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그림자

그리움이 머무는 자리에서

by 효재

바람이 차갑다.

여름의 끝은 언제였을까, 살며시 기억 속으로 숨어든다.


아려오는 가을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아이, 추워.

툭,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투정 섞인 말 한마디.

가을이 오면 생각 나는 것들.

아픔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기억 저 편,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나를 문득 떠올려본다.


언제였던가.


우리는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제주행 배에 몸을 실었다.

잔잔히 흔들리는 선실 안, 서로의 이야기가 파도처럼 번져갔다.


제주의 바람과 백록담의 호수를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때, 제주도가 눈 앞에 다가왔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도의 시간은 우리를 더욱더 단단하게 엮어 주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밀고 끌며 한라산의 정상을 올랐다.


기적 같은 9시간.

그 길 위에서 들려오던 까마귀의 울음소리조차 정겨운 음악의 향기였다.


붉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가을의 정취가 스며들고, 한 걸음 또 한걸음 낙엽이 쌓인 돌계단은 설렘 가득한 행복의 길이었다.


피부에 스치는 서늘한 공기,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은 마치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나 잡아봐라, 나 찾아봐라.”장난스레 속삭였다.


형형색색으로 붉게 물든 나무들, 떨어진 낙엽위에 쌓인 가을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그렇게 가을은 마음 속 추억이 되어, 기억의 한편에 이 가을이 조용히 자리 잡는다.

멀어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날의 우리를 본다.

햇살에 번진, 추억 속의 그림자들.


나의 보고싶은 동무들이다.

오늘도 그들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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