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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이라는 현실을 인정했다

by 방송과 글 사이

“노안입니다.”


2년 전, 안과 의사가 내게 덤덤하게 말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마흔을 막 넘긴 내게 노안 판정은 청천벽력이었다. 이참에 ‘노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노안’은 ‘늙어 시력이 나빠짐. 또는 그런 눈’을 말한다. 노안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갑자기 나이 든 것 같아 서글퍼졌다.


“자기야, 내가 할머니가 된 것도 아닌데 벌써 돋보기를 쓰는 게 말이 돼?”


집에 와서 남편에게도 괜히 투덜댔다. 남편 역시 양쪽 시력이 1.5였지만 노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남편이 노안이어도, 요즘 40대 노안이 많다고 해도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노안 안경을 맞춘 후에도 사람들 앞에서는 웬만하면 돋보기안경을 꺼내지 않았다. 되도록 집에서만 안경을 썼고, 밖에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아도 참았다. 노안 안경은 남들에게는 보이지 싶지 않은 나의 약점 같았다.




잘 안 보여 자꾸 얼굴을 찡그려서 그런 걸까. 어느 날 깊게 팬 이마 주름을 보며 한탄이 절로 나왔다. 노안(老眼)인 것도 모자라, 노안(老顔)이 된 것 같아 서글펐다. 그날 이후 이마 주름 때문이라도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때 무조건 안경을 썼다. 안경을 쓰지 않을 때는 금세 눈이 피로했는데, 안경을 쓰니 몇 시간은 거뜬했다. 노트북도, 책도 편하게 보고, 일도 훨씬 잘됐다. 노안 안경 덕분에 가까운 눈앞 세상이 확 밝아진 느낌이랄까.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자기 수용(self-acceptance)’이 정서 안정과 삶의 질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켈리 맥고니걸(Kelly McGonigal) 교수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할 때,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라고 했다. 내가 노안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삶의 질이 분명히 향상됐다.




종종 친구들도 작은 글씨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다가, 늙었다고 한숨을 푹 내쉴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나도 노안이라 잘 안 보여. 노안 안경 쓰면 되니까 괜찮아.” 친구들이 내 말에 위로받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처럼 그들도 자신이 노안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편한 걸 참는 게 미덕이 아니라는 걸.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안경점에 갔다.


“어떤 안경으로 하실까요?”

“남편도, 저도 노안 안경 다시 맞추려고요.”


나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좀 비싸더라도 매일 쓰는 거니까 가볍고 디자인이 예쁜 안경을 골랐다. 점원은 노트북도 보고 책도 봐야 하니까 다초점 돋보기안경을 추천했다. 예전에는 그저 잘 보이기만 하면 되지 싶어 저렴한 안경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돈을 들이더라도 내 눈을 더 편안하게 하고, 더 마음에 드는 안경을 샀다. 노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내 눈도, 내 삶도 조금 더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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