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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an 19. 2022

손을 안 잡았네?

여자 셋과 사는 남자 이야기 - 8

요즘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난 '필름 카메라' 하나를 가지고 있다.


2년 전에 중고로 산 '펜탁스 미 슈퍼'라는 모델이다. 이 사진기는 수동이다. DSLR을 사용해봤지만, 거의 오토 모드로 사용했기 때문에, 필름에다가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이 사진기는 무척 불편한 물건인 것도 사실이다. 애써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카메라라... 사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화질이야 당연히 지금 쓰고 있는 아이폰 12 프로맥스가 훨씬 좋을 것은 당연한 사실에다가 휴대성도 휴대폰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끼면 '똥' 된다는 생각으로 2년 만에 겨우 좀 찍기 시작했다.


2년 전에 같이 산 코닥필름도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이 지나버린 후 지만, 아까우니깐 새로 사지 않고 쓰기로 했다. 2년 만에 꺼낸 필름 카메라 안에는 이미 필름이 장착되어 있었다. 2년 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간 '연천 호로고루'에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이라서, 마스크에 가린 얼굴이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며칠간 열심히 찍은 덕분에 필름 두 개를 사진관에서 현상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필름 카메라만 있던 시절에는 사진관에서 금방 현상이 됐지만, 요즘 규모가 작은 곳은 필름을 따로 택배로 붙이고, 사진은 스캔하여 메일로 보내준다고 한다. 가격도 엄청 비싸졌고.. 근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필름 카메라의 단점은 바로 그것이다. 기다려야 하고, 사진이 잘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 현상하기 전까지는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드디어 스캔한 사진이 내 이메일에 도착했다.


(2년 만에 현상한 사진 - 호로고루)


필름마다 색감이 다른 건 알고 있었지만, 마치 좋은 필터를 사용한 것 같은 이미지가 등장했다. 사실 좀 놀랐다. 디카나 폰카보다 화질은 떨어지지만, 최첨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던 아내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때는 시온이(첫째) 손만 잡고 다녔지, 은유(둘째) 손을 잡고 다니지 않았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내는 첫째의 손을 꼭 붙들고 다녔고, 둘째는 대신에 곤충채집통을 매게 했던 걸로 기억이 났다. 위에 사진을 보면 마치 둘째가 소외받은 이상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하지만 왜 아내가 첫째의 손을 꼭 잡고 다녔는지... 금세 이해하게 되었다.


2년 전 첫째는 재활프로그램을 통해서, 사회성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돌발적인 행동들이 많았고, 스피드도 굉장히 빨라져서, 이 아이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면, 진심을 다해 뛰어 잡아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렇게 밖으로 외출이라도 나가는 날에는 아내는 첫째가 돌발적인 행동을 할 경우 빨리 반응하기 위해서, 언제나 저렇게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둘째는 좀 신경을 덜 쓴 것도 사실이기도 하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은유(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은유가 나중에 더 나이가 먹고 이 사진을 보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아직 아이인데, 언니보다 더 성숙한 역할을 요구한 게 아니었을까?

여러 가지 후회되는 나의 행동과 말들이 생각났다.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손 잡는 것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나는 너를 보호하고 지킬 것이라는 비언어 적지만 가장 적극적인 표현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둘째를 어린이 집에 등원시키며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러기에 이제 손을 잘 잡아주는 아빠가 되어보려고 한다.

은유가 성인 됐을 때, 나를 '손이 참 따뜻하고, 자신의 손을 많이 잡아 주던 존재'라고 기억되고 싶다.


(1월에 간 할머니 집 + 고양이와 함께)


그래도 사진이라도 따뜻하게 나와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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