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my favorite patient

by 물고기자리

병원에서의 경험은 누구에게든 대체로 좋지 않다. 상대의 불친절 때문이든 불편한 몸 상태 때문이든. 한국에서는 예약을 하고 가서도 1시간 이상 기다리기가 일쑤였다. 회사에 늘 반차를 내거나 사정을 얘기해야 해서 눈치도 보였다. 그렇게 의사를 보고 나와서도 불편한 마음이 앙금처럼 남았다.


복용 중인 약을 끊고 싶다고 말했을 때 담당 의사는 딱 한 마디 했다.


“바로 응급실로 실려올 텐데요.”


언젠가 임신을 하려면 약을 끊어야 하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의사는 전혀 조심스럽지 않은 말투로 임신은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했다. 임신하려다가 본인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자신의 딸이라도 그렇게 쉽게 얘기했을까. 지금이야 그런 얘기를 들어도 적당히 걸러 듣지만 20대의 나는 그런 얘기에 쉽게 상처받았다.


그 얘기를 들은 후 아이를 낳으려고 약을 끊었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아무런 약도 먹지 못해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아이는 무사히 태어나지만 엄마는 죽고 마는, 어디에선가 많이 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나를 자주 상상했으니 그 한마디가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그 의사는 알고나 있을까.


미국 병원에 처음 간 날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연로한 의사가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환자들과 스스럼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그렇게 충격적일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이 분야에서 나름 굉장히 유명한 의사가. 피를 뽑을 때에는 진료실 안에서 간호사와 단 둘이 있었다. 한국에서 대기표를 뽑고 일렬로 앉아 피를 뽑던 장면이 떠올랐다. 조용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간호사와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피를 뽑는 경험을 하고 나니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한창 분주하던 어느 날, 대기 시간이 1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기다리는 환자들도 지치고 일하는 의료진도 지치는 날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피를 뽑아주던 젊은 간호사는 듣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너무 미안해했다. 초췌한 얼굴에는 피로가 잔뜩 얹혀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당신들이 더 고생하지 않느냐고 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 무렵 의료진들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피를 뽑으려는데 잘 안되던지 그녀는 실패를 거듭했다. 피는 나오지 않고 팔에 주삿바늘 자국만 늘어갔다.


“괜찮아, 내가 원래 혈관이 잘 도망 다녀. 얼마든 찔러봐도 돼.”


상대가 나에게 다정하게 굴면 나도 다정하게 대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엄마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커서 사회생활을 할 텐데 사회가 조금은 친절하게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니면 나란 사람이 원래 그렇게 무른 걸지도.


이유가 뭐건 간에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my favorite patien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갈 때마다 복도를 훤히 밝힐 만큼 환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미스 리. 당신 왔군요!”



그랬던 그녀가 7월에 병원을 찾아간 나를 붙잡고 목소리를 낮췄다.


“미스 리, 다음번에 언제 와요?”


“아마 6개월 후일 텐데요?”


“아, 그럼 못 보겠네요.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저 병원 그만둬요.”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상당수의 의료진이 코로나 타격으로 아예 이 분야를 떠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온 참이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그냥 올해까지는 쭉 쉴 거라고 했다. 친구랑 다음 달에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거라고. 나는 잘했다고, 진짜 잘했다고 엄지 척을 해줬다. 나도 좀 트렁크에 넣어가면 안 되냐고 농담을 던지며 아이들에게 주려고 샀던 뚜레쥬르 빵 중 2개를 부스럭부스럭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극구 사양하던 그녀는 혼자만 먹으라는 내 말에 키득 웃으며 빵을 서랍에 넣었다.


진료실을 나서며 우리는 찐한 허그를 나눴다. 스치는 인연이지만, 몇 번 본 적도 없지만 그녀 말대로 우리 사이에는 special bond가 있었다. 병원도 결국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곳 아니던가.


이제 병원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지만 그녀가 어딘가에서 자신의 몸을 챙기며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어디에서든 그 환한 미소로 또 다른 사람과 special bond를 맺고 있겠지. 이제 병원에 가면 누구랑 농담을 주고받는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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